
건강한 식재료로 자리잡은 올리브유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랑받는 식물성 기름 중 하나다. 하지만 ‘올리브오일’이라는 이름 아래 판매되는 제품들의 종류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엑스트라 버진, 버진, 퓨어, 라이트 등 병에 적힌 이 용어들은 단순한 마케팅 문구가 아니다. 실제 조리법에 따라 선택을 달리해야 하며, 잘못 사용할 경우 영양소 손실뿐 아니라 건강에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올리브유는 본질적으로 열에 민감한 기름이다. 그 민감도를 결정짓는 핵심은 산도와 정제 여부, 그리고 원재료의 가공 방식이다. 종류별 특성을 정확히 알고 써야 그 효과도 제대로 누릴 수 있다.

1.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 저온 생요리에 최적화된 향미 중심 오일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는 가장 가공이 덜 된 형태다. 올리브 열매를 기계적 압착만으로 짜낸 이 오일은 산도가 0.8% 이하로 낮으며, 인위적인 화학 처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이로 인해 풍부한 향과 과일 향미, 폴리페놀 등의 항산화 물질이 가장 많이 보존되어 있다. 문제는 이런 풍미와 영양소가 열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엑스트라 버진은 연기가 나기 시작하는 ‘발연점’이 낮다. 보통 160~180도에서 산화가 시작되며, 이 지점을 넘기면 좋은 성분은 파괴되고 오히려 유해한 화합물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드레싱, 마리네이드, 완성된 요리에 뿌리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특히 생선회, 샐러드, 구운 채소 위에 올리면 본연의 향과 식재료가 가진 자연미를 살려준다.

2. 버진 올리브유 – 약한 불의 조리나 간단한 볶음에 적합
엑스트라 버진보다는 한 단계 낮은 등급인 버진 올리브유는 산도가 2% 이하로 약간 높고, 풍미나 향에서 약간의 변화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화학적 정제를 거치지 않아 건강 성분이 다수 남아 있으며, 엑스트라 버진과 달리 어느 정도의 열을 견딜 수 있다. 발연점은 평균 200도 내외로, 가벼운 볶음 요리나 짧은 시간 조리에 적합하다.
버진 올리브유는 요리 시향미의 일부를 유지하면서도 열 안정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는 점에서 실용성이 높다. 특히 달걀 스크램블이나 마늘과 허브를 살짝 볶는 저온 소테에 적합하며, 중간불 이하에서 천천히 익히는 지중해식 조리 방식과 잘 맞는다. 다만 장시간 고온 조리에 쓰기엔 한계가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3. 퓨어 올리브유 – 정제 올리브오일과 버진의 혼합형, 고온 조리에 적합
퓨어 올리브유는 이름과 달리 ‘순수하다’는 뜻보다는 ‘정제유’와 ‘버진유’를 일정 비율로 섞은 혼합유를 의미한다. 정제 과정을 거친 올리브유는 산도를 거의 0에 가깝게 낮추고, 불순물을 제거해 발연점을 높인 상태다. 여기에 풍미를 추가하기 위해 일정량의 버진 올리브유를 첨가해 맛의 밸런스를 맞춘 것이다.
발연점은 약 220~240도에 달해 튀김이나 팬프라잉 같은 고온 요리에 사용할 수 있다. 퓨어 올리브유는 버터나 포화지방 위주의 식용유보다 산화 안정성이 높고, 조리 후 남는 유해물질 발생이 적다. 따라서 한식 튀김요리나 구이 요리에 대체용으로 적합하며, 미세먼지나 발암물질에 대한 우려를 줄일 수 있는 실용적인 선택이다.

4. 라이트 올리브유 – 향과 맛 제거된 고온 전용 조리유
가장 오해가 많은 제품 중 하나가 바로 라이트(light) 올리브유다. 이 ‘라이트’는 열량이나 지방 함량이 낮다는 의미가 아니라, 맛과 향이 ‘가볍다’는 뜻이다. 본질적으로는 거의 완전히 정제된 오일로, 향과 색, 맛이 거의 제거돼 있어 일반 식용유처럼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원료는 여전히 올리브이며, 고온 조리용으로 설계된 제품이다.
라이트 올리브유는 발연점이 높고, 산화에 강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항산화 성분과 폴리페놀 등 건강 효능은 상당히 낮아졌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피할 이유는 없다. 오메가-9 지방산 중심의 지방 구조는 여전히 심혈관계에 이롭고, 튀김 등 장시간 조리가 필요한 요리에서 포화지방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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