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낮거나 날씨가 궂은 날, 혹은 미세먼지가 심한 계절엔 빨래를 실내에서 말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아파트 생활이 보편화되면서 베란다나 거실에 빨래를 널어두는 모습은 흔한 일상이 됐다. 문제는 이 같은 습관이 단순히 생활의 편리함을 넘어서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국내외 공공보건기관과 환경의학 전문가들은 실내 빨래 건조 시 환기를 하지 않으면 폐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특히 민감한 호흡기 질환자나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 아이들에게는 실내 습도와 공기 중에 떠도는 유기화합물들이 위험요소로 작용한다. 단순한 생활 습관이 실제 폐 기능 저하와 염증 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제 과학적 근거를 가진 현실이 되었다.
1. 실내 건조는 곰팡이와 세균 번식에 최적의 조건
젖은 빨래는 수분을 포함하고 있는 직물이다. 이를 실내에서 말릴 경우, 주변 공기 중으로 다량의 수분이 증발하게 되는데, 이는 습도 상승으로 이어진다. 실내 습도가 60% 이상으로 지속되면, 공기 중에 곰팡이 포자가 활성화되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진다. 벽지, 천장, 옷장 속뿐 아니라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속까지 이 곰팡이 포자가 퍼지게 되며, 이는 천식, 알레르기, 기관지염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
특히 흡입형 곰팡이는 폐포 내에 침투하여 염증 반응을 일으키며, 장기적으로 폐 섬유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2. 젖은 옷에서 발생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실내 공기질을 악화시킨다
세탁 후에도 남아 있는 세제 성분과 섬유유연제는 건조 과정에서 천천히 기화되며 공기 중으로 퍼진다. 문제는 이들 물질이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이라는 점이다. VOCs는 낮은 농도에서도 눈, 코, 목의 점막을 자극하고, 장기적으로는 폐 기능 저하, 두통, 집중력 감소 등의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섬유유연제에서 나오는 합성향료 역시 대표적인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며, 환기가 되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서는 특히 그 농도가 높아진다. 실내에서 빨래를 말리면서 머리가 아프거나 가슴이 답답해진 적이 있다면, 바로 이 화학물질이 원인일 수 있다.
3. 제습기나 제습제를 사용하지 않으면 습도가 조절되지 않는다
실내 빨래 건조 시 가장 간과되기 쉬운 부분은 ‘제습 조치’다. 환기를 하지 않은 채로 제습기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방 안 습도는 빠르게 상승하고, 그 상태가 몇 시간에서 하루 이상 지속된다. 이러한 환경은 진드기, 박테리아 등 각종 미생물의 번식률을 극대화시킨다. 특히 겨울철에는 창문을 열기 어렵기 때문에, 제습기의 사용 여부가 실내 공기질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무전력 제습제 또한 도움이 되지만, 수분 포화 상태에서는 효과가 급격히 떨어지므로 주기적인 교체와 병행 사용이 필요하다.
4. 아이, 노인, 호흡기 질환자에겐 더욱 치명적인 환경
성인 건강한 남녀에게도 실내 빨래 건조는 위협이 될 수 있지만, 호흡기가 약한 집단에게는 그 피해가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영유아는 폐가 완전히 성숙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공기 중 미세 입자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으며, 기관지염이나 알레르기 비염 발병률이 급격히 높아진다.
노인은 면역기능이 떨어져 폐렴으로의 이환율이 높아지며,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을 앓고 있다면 빨래의 수분만으로도 기침,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유발될 수 있다. 실제로 영국의 국립보건서비스(NHS)에서는 호흡기 질환 환자들에게 실내 빨래 금지를 권고하고 있다.
5. 환기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구조적 해결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물론 환기는 기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기는 단순히 창문을 열어두는 수동적 방식에 그치기 때문에, 습도 조절과 유해물질 제거에 충분치 않다. 특히 외부 공기의 질이 좋지 않은 날엔 창문을 열기도 꺼려지기 마련이다. 이럴 경우, 빨래 전용 공간에 환기팬을 설치하거나, 전열교환기를 통한 지속적인 공기 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내 환기구나 환풍기의 청결 관리도 중요하다.
무심코 방치된 필터나 팬은 곰팡이와 먼지의 집합소가 되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빨래를 실내에서 말리는 일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일상이다. 하지만 그 일상이 건강을 해치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점점 더 누적된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질의 변화는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우리의 폐를 침식시킨다.
실내 빨래가 불가피하다면, 환기와 제습, 화학물질 최소화 등의 조치를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건강은 특별한 무언가를 실천해서 얻는 게 아니라, 평범한 습관 하나를 ‘제대로’ 실천할 때 지켜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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