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철 전기요금을 아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에어컨의 ‘제습 모드’를 선호한다. 일반 냉방보다 전기 소비가 적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제조사 매뉴얼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제습이 냉방보다 전기를 덜 먹는다”는 주장이 반복된다. 하지만 이 말은 조건에 따라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는 제습 모드가 냉방보다 더 많은 전력을 소비하게 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 구분을 모르고 습관적으로 제습을 켠다는 점이다.

제습 모드는 실내 온도를 낮추는 기능이 아니다
에어컨의 ‘제습’은 말 그대로 공기 중의 수분만 줄이는 기능이다. 냉방처럼 실내 온도를 빠르게 낮추는 게 주목적이 아니다. 원리는 이렇다. 에어컨 내부 냉각핀(증발기)에 실내 공기를 통과시키면서 수증기를 응축시켜 물로 바꾸고, 이를 배출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냉각 효과는 발생하지만, 주요 목표는 온도 변화가 아닌 습도 조절이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제습을 ‘조용한 냉방’ 정도로 오해하고 사용하는 데 있다. 특히 실내 온도가 이미 높은 상태에서 제습만으로 공간을 식히려고 할 경우, 냉방보다 더 오랜 시간 에어컨을 가동하게 되고, 이로 인해 누적 전력 소비량이 오히려 증가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실내 온도가 28도 이상이면 냉방이 더 효율적이다
제습이 냉방보다 전기요금을 아끼는 건 ‘실내 온도가 이미 충분히 낮고 습도만 높은 상태’일 때다. 반대로 실내 온도가 28도 이상일 경우, 제습은 공간을 빠르게 식히지 못해 계속 작동하게 되고, 오히려 냉방보다 더 많은 전력을 소비하게 된다. 이는 에어컨의 압축기 작동 방식과 관련이 있다.

냉방 모드는 목표 온도에 도달하면 압축기를 껐다 켰다 하며 조절하는 반면, 제습 모드는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압축기를 더 오래, 더 자주 작동시키는 경향이 있다. 즉, 여름 낮처럼 고온 다습한 상황에서 제습만으로 실내 환경을 개선하려 하면, 기계는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자동 제습 모드도 전기 소모가 상당하다
최근 에어컨에는 자동 제습 기능이 탑재돼 사용자가 온도와 습도를 설정하면 기계가 알아서 조절해주는 모드가 있다. 하지만 이 기능 역시 맹신하기 어렵다. 자동 제습은 내부 알고리즘에 따라 온도와 습도를 동시에 관리하는 복합 운전을 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냉방보다 에너지 소모가 많은 고출력 제습 운전으로 전환될 수 있다.

특히 사용자가 체감으로 시원함을 느끼지 못하고 리모컨으로 온도를 계속 낮출 경우, 제습 모드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냉방 모드와 비슷한 수준의 전력을 소비하게 된다. 문제는 사용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제습 중’이라고 생각하므로, 전기요금이 왜 늘어났는지 알기 어렵다는 데 있다.

제습이 냉방보다 유리한 조건은 따로 있다
그렇다고 제습 모드를 무조건 피하라는 뜻은 아니다. 제습이 전기요금 측면에서 실제로 유리하게 작용하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실내 온도는 낮은데 습도만 높은 날.
둘째, 장마철처럼 외부 기온은 높지 않지만 집 안이 눅눅할 때.
셋째, 취침 전 실내를 조용하게 조절하고 싶을 때.
이러한 조건에서는 냉방이 과하게 작동하는 것보다 제습이 훨씬 효율적이다. 문제는 ‘덥고 습할 때도 제습이 냉방보다 덜 먹는다’는 일반화된 오해다. 전기요금 아끼려다 오히려 더 많은 전력을 낭비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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