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이 된 장면을 걷는 기분, 그게 바로 성지순례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거다. ‘저 배경, 진짜로 있을까?’ 하고. 실제로 많은 인기 애니는 현실의 장소를 모델로 배경을 구성하고 있다. 성지순례(聖地巡礼, せいちじゅんれい)라는 단어는 원래 종교적 의미지만, 일본에선 애니 팬들이 작품 속 무대를 직접 찾아가는 여행을 뜻한다. 단순한 팬심을 넘어, ‘애니 속 현실’을 직접 눈으로 보고 발로 걷는 감각은 꽤 중독적이다.
이번엔 그런 팬들을 위해 현실 속 애니 배경지를 탐방할 수 있는 코스를 소개한다.

‘너의 이름은’의 배경 – 도쿄 & 기후의 이중 감성
‘너의 이름은(君の名は, きみのなは)’ 하면 떠오르는 장면들, 생각보다 도쿄 도심 한복판에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건 요츠야역(四ツ谷駅, よつやえき) 근처의 스가 신사(須賀神社, すがじんじゃ). 계단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영화 후반부의 중요한 장면 배경이기도 하다. 팬이라면 꼭 같은 각도로 사진을 찍어보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의 핵심은 도쿄만이 아니다. 미야미즈 미츠하의 고향인 이토모리 마을(架空の町)은 기후현(岐阜県, ぎふけん) 히다시(飛騨市, ひだし)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히다후루카와역(飛騨古川駅)**은 애니에서 거의 그대로 복제된 배경이라, 실재하는 장소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도쿄에서 신칸센 + 특급 열차로 이동 가능해서 하루 코스로도 가능하다.

‘클라나드’와 ‘에어’ – 교토와 주변 지역의 정적 감성
감성 애니의 대명사 ‘클라나드(CLANNAD)’와 ‘에어(AIR)’는 모두 교토(京都, きょうと) 및 주변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작품 전체가 잔잔한 일상과 사람 사이의 감정에 집중된 만큼, 배경도 조용한 거리와 하천, 작은 상점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클라나드’의 주요 배경 중 하나로 알려진 가모가와 강(鴨川, かもがわ) 근처 벤치와 작은 상점 거리들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고, 마치 캐릭터들이 금방이라도 걸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이런 장소들은 사람이 많지 않아, 진짜로 ‘그 장면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감정’이 훨씬 진하게 온다. 관광지보다 평범한 골목이나 강변길을 걷는 게, 팬들에게는 더 특별한 의미가 된다.

‘슬램덩크’의 전설적인 그 바닷가 – 가마쿠라
애니 성지순례 하면 절대 빠질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슬램덩크(SLAM DUNK)’ 오프닝의 그 전설적인 철도 건널목(踏切, ふみきり). 이 장소는 가마쿠라(鎌倉, かまくら) 근처 **에노덴 전철(江ノ電)**의 가타세엔도 역(片瀬江ノ島駅) 인근이다.
건널목 너머로 보이는 바다, 기차가 지나가는 순간의 소리, 그리고 그 풍경 속에서 포즈를 취하는 수많은 팬들. 이 장면을 보려고 일부러 일본을 찾는 해외 팬들도 많다. 주변엔 에노시마 섬이나 해변 카페, 온천도 있어서 성지순례 + 힐링 여행으로도 충분하다.

‘울려라! 유포니엄’ – 리얼 일상 속 배경, 우지
‘울려라! 유포니엄(響け!ユーフォニアム, ひびけ!ゆーふぉにあむ)’은 교토 부 우지시(宇治市, うじし)를 거의 다큐 수준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고등학생들의 동아리 활동, 일상의 고민, 작고 섬세한 감정을 담아낸 이 애니의 무대는 모두 실제 존재한다.
특히 우지 강(宇治川) 근처의 다리, 상점가, 학교 뒤편 골목 등은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익숙한 장면들이다. 우지는 원래 교토 근교의 조용한 도시지만, 이 애니 덕분에 새로운 팬층이 생겼고, 현지 카페나 가게들도 관련 굿즈나 전시를 종종 한다.
이 작품은 배경뿐 아니라 ‘실제 학생들의 일상’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여행이 단순한 관광이 아닌 ‘체험’으로 확장되는 경험을 준다.

성지순례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이런 성지순례 여행은 단순한 팬 활동을 넘어서, 일본의 지역 경제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실제로 애니 배경이 된 지역은 관광객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팬들을 위한 안내판(聖地案内, せいちあんない), 지도, 기념 굿즈까지 생긴다.
무엇보다 직접 장소를 찾았을 때의 감정, 사진이 아닌 장면을 현실로 마주했을 때의 짜릿함은, 일반 여행에선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내가 본 그 세계가 현실에 존재한다’는 경험은 단순히 놀러 간다는 개념과는 다른 차원의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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