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 중 하나가 약을 먹다 남기고 서랍에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유통기한이 지난 약은 쓰레기통에 던져지거나 변기, 하수구에 흘려보내지기 일쑤다. 하지만 이렇게 버려진 약이 결국 강과 하천을 오염시키고, 세균이 항생제에 내성을 갖도록 만들어 ‘슈퍼 버그’로 진화하게 만들 수 있다. 슈퍼 버그는 기존 항생제로는 치료가 되지 않는 고위험 세균으로, 세계보건기구와 질병관리청이 21세기 보건 위기 중 하나로 경고하는 치명적 존재다. 잘못된 약 폐기가 개인을 넘어 전 인류 건강에 영향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수구로 흘려보낸 약 성분은 정화되지 않고 환경에 그대로 남는다
유통기한이 지난 약을 변기나 하수구에 버리는 습관은 생각보다 흔하다. 하지만 폐수처리시설은 이런 의약물질을 완전히 정화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항생제 성분은 정화 과정을 거쳐도 상당 부분 남게 된다. 결국 약 성분은 하천이나 지하수로 흘러들고, 그 물을 먹고 사는 환경 속 세균들이 항생제에 계속 노출되면서 내성을 갖기 시작한다.

특히 하천 하류나 정수장 근처에서 발견되는 미생물들 중 일반적인 항생제에 반응하지 않는 균들이 늘고 있는 추세이며, 이들은 새로운 병원균으로 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로 흘려보냈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게 퍼지고 있는 셈이다.

남은 항생제 복용도 문제지만, 폐기 방식이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감기 걸렸을 때 받은 항생제를 증상 좋아졌다고 중간에 끊는 사람은 많다. 그러고 남은 약은 서랍 속으로 들어가거나 쓰레기통에 던져진다. 문제는 이렇게 방치되거나 버려진 약이 다른 사람이나 동물, 환경에 노출됐을 때다. 특히 쓰레기 매립지를 통해 항생제가 토양에 침투하거나, 동물 사료로 잘못 섞이게 되면 항생제에 노출된 가축들 사이에서 내성균이 형성될 수 있다.

이들은 식탁을 통해 인간에게 다시 전해지고, 우리가 일반적인 감염에도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슈퍼 버그 감염으로 인한 치료 실패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매년 수십만 건이 보고되고 있다.

슈퍼 버그는 감기처럼 흔한 질병도 치명적으로 만든다
‘슈퍼 버그’라는 말은 마치 영화 속 설정처럼 들릴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매우 구체적인 위협이다. 일반적으로는 항생제로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방광염, 폐렴, 상처 감염 등이 슈퍼 버그에 의해 발생하면 치료가 어려워지고 입원 기간이 길어지며 사망률도 급격히 상승한다. 특히 항생제 내성균에 감염된 환자의 경우 사망률이 최대 50% 이상 높아진다는 보고도 있을 정도다. 이처럼 인류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세균이 강해지는 원인 중 하나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버린 약물들 때문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유통기한 지난 약은 약국이나 보건소에 맡기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의약품은 일반 폐기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는 폐의약품 수거함을 보건소나 약국에 비치하고 있으며, 시민 누구나 약을 가져가 폐기할 수 있도록 운영 중이다. 또한 병의원에서는 정기적으로 남은 약 반납 캠페인도 진행하므로, 평소에 약을 정리하고 분리해 두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특히 항생제나 호르몬제, 스테로이드 성분이 포함된 약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기 때문에 반드시 전용 수거함에 버려야 한다. 이처럼 작은 행동 하나가 슈퍼 버그 확산을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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