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낡은 화장실 신경써서 수리했는데”… ‘원상복구’ 요구받은 세입자가 소송까지 당한 현실
낡은 화장실 손수 교체, 돌아온 건 ‘원상복구’ 요구
최근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화장실을 깨끗이 수리해줬더니 집주인이 원상복구를 하라고 소송을 걸었다’는 세입자들의 경험담이 잇따라 공유되고 있다.
전셋집에 입주한 세입자 A씨는 화장실 샤워기와 수전(수도꼭지)이 심하게 녹슬고, 타일 곳곳에 곰팡이가 펴 있었던 탓에 생활이 힘들었다. 결국 본인의 사비로 전문 수리공을 불러 샤워기, 수전을 포함해 주요 부품을 새것으로 교체했다. 이전 집주인과 전화로 “고치고 사용해도 된다”는 동의까지 확인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계약 만료가 다가오자 집주인은 “출입 당시 있던 그대로 돌려놓고 나가라”며 곰팡이가 심하고, 기능이 떨어지는 낡은 샤워기와 수전 등 ‘기존 부품’의 원상 복구를 요구했다. 더 나아가 소송까지 제기한다는 협박성 연락까지 받자 세입자는 경악했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수리공에게 기존 부품을 꼭 챙겨 돌려 달라”고 요구했던 것도 집주인의 강한 원상회복 요구 때문이었다.

원상복구 논란, 어디까지가 법적 의무인가
전·월세 계약에서 집주인과 세입자 간 ‘원상복구’ 의무는 임차인의 사용 편의와 임대인의 재산권 보장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대표적인 현장 이슈다.
민법상 임차인은 임차물(이 경우 집)의 ‘통상사용’ 범위 내에서 약간의 훼손이나 노후를 초래했다면 임대인이 책임져야 할 필요비(보일러, 누수 등 건물 유지 필수 항목)는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편의 증대를 위해 ‘더 좋아 보이는’ 기구나 장식(예: 고급 수전, 트렌디한 렌지후드, 자동 비데 등)을 임의로 교체했다면 대부분 사적 편익으로 판단된다.
문제는 ‘악취, 곰팡이, 기능상 문제로 최소한의 위생적 사용조차 곤란한 상태’와 ‘아직 사용 가능하나 구식 디자인이나 성능 불만족으로 새로 교체’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대다수 집주인들은 “큰 손실만 안 주면 된다”고 말하지만, 일부는 “내 집에 내 맘대로 바꾼 게 마음에 안 든다”며 법에 근거해 원상회복 청구 소송까지 걸곤 한다.

법이 보는 필요비와 유익비의 구별
- 필요비: 보일러 교체, 누수/옥상 방수공사, 하수관 파손 등 집의 존속 및 기능 유지에 ‘필수적인’ 수리비. 사후 청구하면 임대인이 상환해야 함(민법 626조).
- 유익비: 단순히 편의·미관 개선(예: 인테리어 필름, 욕실 리모델링, 최신 샤워기·수전 설치 등)만을 목적으로 한 비용. 임대인이 동의하지 않았다면 법적 상환 의무 없음.
결국 집의 ‘기능’이 아니라 ‘외관’과 ‘세입자만의 취향’에 대한 개선인 경우, 입증 책임과 비용 부담은 세입자에게 돌아가는 구조다.

원상복구 소송이 쏟아지는 이유
집주인-세입자 신뢰 붕괴
최근 임대차 시장의 불안, 집값 상승 여파로 집주인들이 ‘집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진 데 비해, 세입자들은 ‘최소한의 생활 권리’조차 인정받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높아졌다. 일부 집주인은 디자인·판매 가치가 높은 리모델링, 고급 자재를 원하지 않아 기존 구식 상태를 고집하고, 바뀐 부분을 문제 삼아 원상회복 청구 소장을 보내곤 한다.
법적 해석이 모호한 회색지대
샤워기·수전처럼 생활에 필수적이지만 노후된 상태에서도 ‘기능은 있’으면 필요비 청구가 쉽지 않은 반면, 타일 균열·심각한 곰팡이처럼 위생 문제가 심각하면 집주인 측에 수리 책임이 돌아가는, 그러나 실무상 입증은 어렵고 사례가 다양하다.
집주인-세입자 ‘타협’ 부재
일부는 처음부터 서로 합의서를 써두기도 하지만, 구두 동의만 믿다가 갈등이 커지고, “내가 수리해줬으니 고마워할 줄 알았더니 되려 소송”이라는 황당한 사례가 늘고 있다. 증빙(사진, 녹취, 문자 등)이 없다면 세입자가 불리하다.

실제 판례는? 세입자가 반드시 챙겨야 할 권리와 주의점
판례 추이
- 노후·파손 상태가 심해 생활 자체가 불가능했다면: 입주 전 사진, 영상, 제3자의 진술 등이 입증자료로 인정될 수 있고, 일방 교체가 아닌 ‘기능 보완 차원의 교체’였다면 필요비로 일부 인정될 여지.
- 미관 개선, 자의적 선택 개선이라면: 임대인은 비용상환 및 원상복구 책임 없음. 임대인 동의 없이 구조변경(벽체 타공, 이중창 설치, 바닥 철거 등) 시 법적 책임까지 부과 가능.

수리·교체 전 반드시 남기는 ‘합의’와 기록만이 세입자의 안전망
낡은 화장실을 수리한 선의가 되레 법적 소송, 원상복구 분쟁의 불씨가 된 우리 임차 현장의 현실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집주인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모든 요청과 진행을 최대한 문서로 남겨라’는 상식이 법정에서조차 세입자를 지켜줄 거의 유일한 안전장치가 됐다.
임차인-임대인 모두가 “내 집”이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합의와 타협, 꼼꼼한 기록과 법적 권리 의식으로 갈등을 현명하게 예방하는 문화가 이제는 절실하다. 실제로, 너무 오래된 집은 입주 전부터 “현상 유지를 위한 수리 가능 내역”과 “수리비 부담 주체”, “퇴거 시 조치”를 미리 계약서상에 명확히 규정해둬야 향후 예고 없이 닥칠 분쟁의 화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이상으로, 단순히 낡은 화장실을 수리했을 뿐인 세입자가 소송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 이유와 법적 쟁점, 앞으로의 교훈을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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