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400년 전 만들어진 수메르인의 점토판이 학자들의 노력으로 해독됐다. 지혜로운 여우가 위기에 처한 신을 구해내는 수메르 우화가 담겨 학계의 관심이 쏠렸다.
미국 시카고대학교 역사학자 야나 마츠작 박사 연구팀은 28일 공식 채널을 통해 저승에 속박된 폭풍의 신 이쉬쿠르를 구하기 위해 지혜를 짜낸 여우 이야기를 담은 점토판을 소개했다.
샘플 번호 ‘Ni12501’이 붙은 이 점토판은 현재 이라크 카디시야 주에 자리한 수메르 고대 도시 니푸르에서 19세기 출토됐다. 니푸르는 수메르의 절대신 엔릴을 모신 신전이 자리한 정치, 문화, 종교의 중심지인 만큼 많은 학자들이 점토판 해독에 도전했다.
다만 이 점토판은 표면의 손상이 너무 심해 아무도 해독에 성공하지 못했다. 1956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시리아 전문가 사무엘 노아 크레이머 박사가 간단한 내용을 소개했을 뿐, 전체 문장은 수수께끼로 남았다.
연구팀은 최근 재조사를 통해 점토판에 새겨진 글은 저승에 떨어진 신 이쉬쿠르를 구한 여우 이야기임을 알아냈다. 야나 박사는 “19세기 니푸르에서 나온 점토판들은 대부분 세금이나 계약 등을 담았고 신화나 문학에 관한 것은 극히 일부였다”며 “‘Ni12501’은 보존 상태가 나빠 오랜 세월에 걸쳐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박사는 “우선 읽을 수 있는 부분을 꼼꼼히 해독하고 다른 신화 속 이야기들과 비교하면서 점토판에 새로운 신화의 조각이 담겨 있음이 판명됐다”며 “영리한 여우가 폭풍과 비의 신 이쉬쿠르를 구하는 흥미진진한 우화가 담겼다”고 덧붙였다.
이쉬쿠르는 메소포타미아의 비를 관장하는 자연신으로 상당히 중요시됐다. 나중에는 아다드로도 불렸다. 점토판 속 이야기는 이쉬크루가 여러 동물과 함께 저승에 끌려가 버렸고, 그가 사라지며 지상에 가뭄이 계속되는 상황을 묘사했다.
야나 박사는 “기원전 3000년 발현한 수메르는 태양과 바람, 폭풍 등 자연의 힘을 신으로 받들었다”며 “비의 유무나 계절의 변화, 재해의 원인을 이야기로서 구전함으로써 세계의 구조를 이해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점토판에 따르면, 수메르 신들의 왕 엔릴은 다른 신들을 모아 누가 이쉬쿠르를 구할 것인지 물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용감한 여우만이 모험을 감행했는데, 이를 통해 수메르 사람들은 지혜가 힘을 이기며, 뜻밖의 존재가 신을 구한다는 극적인 사실을 알리려 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 점토판은 수메르 도시국가들이 각자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면서도 문화와 종교, 언어를 공유하던 초기 왕조시대 실상을 보여준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당시 도시국가에는 각각 수호신이 있었고, 이때 만든 점토판들은 절대신 엔릴을 주로 다뤘지만 ‘Ni12501’만은 이쉬쿠르를 자세하 기술해 가치가 상당하다고 학계는 평가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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