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하게 매일 안고 계신 토끼가 있었다
요양병원에 계신 정 할아버지, 82세.
최근 몇 년 사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기억이 하루하루 사라져 가고 있다.
하지만 병실에 들어가 보면 늘 한 가지는 똑같다.
무릎 위에 포근히 안겨 있는, 갈색 토끼 ‘초코’.

처음 만난 날, 할아버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초코는 원래 자원봉사자가 데려온 유기 토끼였다.
다소곳하고 얌전한 성격에 사람 무서운 줄도 몰랐고,
병원에 처음 왔을 때부터 아이들과 어르신들 곁에 조용히 머물렀다.
그중 할아버지 곁엔 유난히 오래 머물렀고,

날은 아예 침대 옆 바닥에 자리를 잡고 새근새근 잠들었다.
하루 종일 따라다니는 작은 간호사
할아버지가 휠체어를 타고 복도를 산책할 때면, 초코는 그 옆을 따라 걷는다.
밥을 드실 때도 식판 밑에서 말없이 기다리며,
심지어 할아버지가 낮잠을 주무실 때면, 베개 옆에 딱 붙어 누워있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초코가 있는 날은 훨씬 덜 불안해하시고,

할아버지와 토끼, 둘만의 언어가 있다
아무리 말을 건네도 반응이 적은 날이 많지만,
초코가 툭툭 앞발로 손을 건드리면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으신다.
입을 열지 않아도 손으로 초코 귀를 매만지고,
귓불을 문지르며 중얼중얼 말하듯 나지막이 이야기하신다.
초코는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잠자코 그 앞에 앉아있다.

기억은 흐릿해져도, 따뜻함은 남는다
사람이 사람을 위로하는 것도 크지만,
동물이 주는 위안은 또 다른 감동이다.
아침이면 이름도, 가족도, 방금 전 나눈 대화도 사라지는 치매의 세계에서
단 하나, 변하지 않는 따뜻한 존재가 있다는 건
초코는 말없이 그렇게 매일의 기적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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