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렉스턴에서 시작된 한국과 페루의 인연
한국과 페루의 방산 협력은 2016년 페루 경찰이 KGM(구 쌍용자동차)의 렉스턴을 순찰차로 채택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페루는 안데스 산맥과 아마존 열대우림 등 험난한 환경을 견딜 수 있는 차량을 찾고 있었고, 내구성이 뛰어난 렉스턴이 선택됐다.

총 2,108대가 도입되며 한국산 차량은 페루 전역에서 신뢰를 얻었다. 이후 2025년에는 STX와 페루 국영기업 FAME이 협력해 무쏘 스포츠 현지 생산을 추진했고, 향후 렉스턴 등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민수용 차량 도입이 군사 협력으로 발전하는 출발점이었다.

K808 ‘백호’, 장갑차의 첫 남미 진출
2024년 5월, 현대로템과 STX는 페루 육군과 약 6천만 달러 규모로 K808 ‘백호’ 차륜형 장갑차 30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 장갑차는 20t급으로 최고 시속 100km를 낼 수 있으며, 런플랫 타이어와 자동 공기압 조절 장치, 수상추진 장치까지 갖춰 산악과 강을 넘나드는 페루의 작전에 적합하다. 2024년 12월 군 기념식 퍼레이드에서는 K808이 태극기와 페루 국기를 함께 내걸고 등장해 양국 협력의 상징이 됐다. 이는 한국 장갑차의 첫 남미 수출 성공이자 페루 육군 현대화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K2 전차로 노후 T-55 전력 교체 추진
페루가 추진하는 최대 과제는 50년 넘게 운용해온 T-55 전차의 교체다. 현재 100여 대를 보유하고 있지만 성능이 한계에 이르렀다. 이를 대체할 유력 후보로 K2 흑표 전차가 떠오르고 있다. 2024년 11월 현대로템은 페루 조병창과 K2 전차·K808 장갑차를 포함한 협약을 맺었으며, 2025년 리마 방산 전시회에서는 K2 전차가 처음 공개됐다. 첨단 사격통제장치, 지형 적응형 서스펜션, 자동 장전 시스템을 시연하며 현지 군 관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업계는 초도 30대 도입 후 최대 200대까지 확대될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 페루 해군 현대화 참여
육상 전력뿐 아니라 해군 현대화에서도 한국의 기술이 선택됐다. 2024년 4월, HD현대중공업은 페루 국영 시마 조선소와 6,4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해 3,400톤급 호위함, 2,200톤급 원해경비함, 1,500톤급 상륙함 2척을 공급하기로 했다. 모든 함정은 현지 조선소에서 건조되며, HD현대중공업은 설계와 기술을 지원한다. 이는 단순 수출을 넘어 현지화·기술 이전까지 포함한 협력 모델로, 페루 정부는 이를 “해군 현대화의 이정표”라 평가했다.

남미 방산 경쟁 속 K-방산의 기회
페루의 군 현대화는 칠레와의 오랜 경쟁 구도와도 맞물려 있다. 한쪽이 무기를 도입하면 다른 쪽도 전력 강화를 추진하는 남미 특유의 균형 논리가 작동한다. 페루가 K2 전차와 K808 장갑차를 도입한다면 칠레 역시 대응 무기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 방산업체에게 남미 전역으로 시장을 넓힐 기회가 된다. 폴란드에서 입증된 신속 납품·체계적 사후관리 경험은 페루와 다른 남미 국가들을 설득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안데스에서 시작된 이 협력은 K-방산이 남미 전역으로 확산되는 발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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