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내 지방은 단순히 무게만 늘리는 요소가 아니다. 지방이 어디에 분포하느냐가 건강에 큰 차이를 만든다. 복부 지방은 심혈관 질환과 대사증후군 위험을 높이는 대표적인 ‘나쁜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반대로 허벅지나 엉덩이 주변에 분포하는 지방은 오히려 심혈관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지방 조직이 단순한 저장소가 아니라, 호르몬과 염증 반응을 조절하는 중요한 대사 기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체 지방이 가지는 보호 효과
엉덩이와 허벅지에 쌓이는 피하지방은 대체로 항염증성 사이토카인을 분비하고, 혈관을 손상시키는 염증성 물질의 분비를 억제한다. 또 이 부위의 지방은 상대적으로 분해 속도가 느려 혈중으로 지방산이 쉽게 방출되지 않는다. 그 결과 혈액 속 중성지방 농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동맥경화와 같은 혈관 손상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여성의 허벅지와 엉덩이 지방이 많은 경우, 동맥 경직도가 낮고 혈압이 안정적이라는 사실을 보고했다. 이는 심혈관 노화가 지연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여성 호르몬과의 연관성
여성은 폐경 전까지 에스트로겐의 영향으로 지방이 복부보다는 하체에 잘 축적된다. 이 지방 분포가 여성의 심혈관 질환 발병률을 남성보다 늦추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에스트로겐은 혈관을 확장시키고 좋은 콜레스테롤(HDL)을 증가시키는 작용을 하는데, 하체 지방과 함께 작용하면 심혈관 보호 효과가 강화된다.
그러나 폐경 이후 에스트로겐이 감소하면 지방이 복부로 재분포되면서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하체 지방이 많은 것이 단순히 미용상의 단점이 아니라, 일정 시기까지는 여성 건강을 지켜주는 방패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사 건강과 인슐린 저항성 완화
허벅지와 엉덩이 지방은 인슐린 저항성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복부 지방은 혈당을 높이고 인슐린 저항성을 악화시키는 반면, 하체 지방은 혈당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실제 임상 연구에서도 허벅지 둘레가 큰 여성일수록 제2형 당뇨병 위험이 낮다는 결과가 있다.
이는 하체 지방이 혈중 지방산을 빠르게 흡수해 저장함으로써, 근육과 간에 지방이 축적되는 것을 막아 인슐린 감수성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결국 하체 지방은 단순한 저장소가 아니라, 대사 균형을 유지하는 완충 장치 역할을 한다.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한 이유
엉덩이와 허벅지 지방이 많다는 사실은 흔히 부정적으로 여겨지지만, 의학적으로 보면 심혈관 건강을 지키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물론 과도한 체중 증가나 전체 체지방 과다는 여전히 위험하다. 하지만 지방의 분포를 고려하면, 하체 중심의 체형은 복부 중심의 체형보다 건강 측면에서 훨씬 나은 선택지다.
결국 중요한 건 무작정 지방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복부 비만을 피하면서도 적정 수준의 하체 지방을 유지하는 균형이다. 여성에게 있어 허벅지와 엉덩이의 지방은 노화를 늦추고 심혈관 건강을 지켜주는 ‘숨은 보호막’일 수 있다. 작은 체형의 차이가 건강 수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