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 위험을 높이는 대표적인 요인 중 하나는 유전적 소인이다. 특히 APOE ε4 유전자는 알츠하이머병 발생 위험을 2~3배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삶의 목표의식(purpose in life) 이 뚜렷한 사람은 같은 유전자를 지니고 있더라도 치매 발병률이 낮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심리적 위안이 아니라, 목표의식이 실제로 뇌의 기능적·생물학적 환경을 바꿔 유전자 발현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스트레스 경로와 염증 반응 억제
삶의 목표의식은 스트레스 호르몬 반응을 안정화한다. 만약 목표 없이 살아가면 일상 스트레스가 만성적으로 누적되고, 이는 코르티솔 과분비와 전신 염증을 유발한다. 염증은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병리 기전인 아밀로이드 단백질 축적과 타우 단백질 변형을 촉진한다.

반대로 목표의식이 있는 사람은 스트레스 반응이 완화되고, 염증 수치가 낮아진다. 이 과정에서 치매 유전자의 발현이 억제되거나 발병이 지연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즉, 심리적 태도가 신체의 염증 반응을 조절하면서 유전자 작용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다.

신경가소성과 인지 예비능 강화
목표의식은 단순히 정신적 만족이 아니라, 실제 뇌 구조에도 변화를 만든다. 뚜렷한 목표를 가진 사람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학습하며, 사회적 교류도 활발하다. 이런 행동은 뇌의 신경가소성을 촉진해 새로운 신경망을 형성한다.

이른바 ‘인지 예비능(cognitive reserve)’이 커져 유전적 위험 요인이 있더라도 치매 증상이 늦게 나타난다. 다시 말해, 같은 유전자를 지녔더라도 목표의식이 있는 사람은 뇌의 방어력이 더 튼튼해지는 것이다. 이는 심리적 요인이 뇌 건강을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대표적 기전이다.

유전자 발현 조절의 관점
최근 유전학 연구에서는 삶의 태도와 환경이 후성유전학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후성유전학이란 DNA 염기서열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지고 꺼지는 방식이 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목표의식이 강한 사람은 스트레스 억제, 사회적 활동, 긍정적 감정 유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치매 관련 유전자 발현을 억제한다.
특히 APOE ε4 보유자의 경우, 이런 생활 태도가 병리 기전을 늦추는 데 실제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축적되고 있다. 결국 마음가짐이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니라, 분자 수준에서 뇌 건강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치매 예방 전략의 새로운 관점
삶의 목표의식이 뚜렷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치매 발병 위험이 낮고, 유전적 취약성을 일정 부분 극복할 수 있다. 이는 치매 예방 전략이 단순히 약물이나 운동, 식습관 같은 물리적 요인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상에서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위해 행동하는 습관 자체가 신경 보호 인자가 될 수 있다.
치매 유전자 자체를 없앨 수는 없지만, 그 작용을 억제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결국 치매 예방은 유전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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