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마는 같은 품종이라도 조리 방식에 따라 맛과 질감이 완전히 달라지는 식재료다. 특히 ‘밤고구마’처럼 퍽퍽한 식감의 고구마조차도 굽는 방식만 바꾸면 달고 촉촉한 ‘꿀고구마’로 탈바꿈할 수 있다. 이런 변화를 만들어내는 핵심이 바로 ‘굽기 전 냉동’이라는 방법이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조리 과정 같지만, 실제로는 고구마 속 전분 구조를 바꾸는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요즘 집에서 ‘겉바속촉’ 고구마를 만들기 어려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방법은 생각보다 실용적이다. 굽기 전 단 한 번의 냉동만으로도 당도와 식감이 확연히 달라진다.

냉동이 고구마 속 전분 구조를 변화시킨다
고구마의 단맛은 조리 중 전분이 당으로 분해되면서 생긴다. 이 과정을 ‘당화’라고 부르는데, 생고구마 상태에선 전분이 그대로 유지되어 맛이 덜하다. 그런데 고구마를 냉동시키면 내부 세포벽이 얼면서 미세하게 파열되고, 이로 인해 전분이 더 잘 노출된다.
결과적으로 구울 때 전분이 당으로 분해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그 양도 많아지는 것이다. 이 원리는 냉동 후 천천히 익히는 방식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즉, 냉동 고구마를 바로 오븐에 넣으면 내부에서 효소 작용이 극대화되면서 꿀처럼 끈적하고 단맛이 진한 고구마가 되는 구조다.

자극받은 아밀라아제 효소가 ‘단맛 폭발’을 만든다
고구마에는 ‘아밀라아제(amylase)’라는 효소가 들어 있다. 이 효소는 열이 가해졌을 때 전분을 포도당, 맥아당 등의 당분으로 분해한다. 그런데 이 아밀라아제는 50~70도 구간에서 가장 활발하게 작동하며, 급격한 고온보다는 천천히 올라가는 열에 반응한다.
냉동 고구마는 해동되면서 내부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게 되고, 이 과정에서 아밀라아제가 극대화된 활성을 보인다. 따라서 일반 고구마보다 훨씬 많은 양의 당을 생성하게 되고, 속이 꿀처럼 촉촉하고 단맛이 풍부한 결과를 낳는다. 그냥 고온에서 바로 구운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다.

껍질째 냉동하고, 해동 없이 바로 구워야 한다
냉동 후 고구마를 굽기 위해선 몇 가지 팁이 필요하다. 우선 고구마는 껍질째 깨끗이 씻어 통째로 냉동시키는 것이 좋다. 이 상태로 얼리면 껍질이 고구마 속 수분과 당이 빠져나가는 걸 막아줘 맛과 촉촉함을 지켜준다. 얇게 썰거나 자르면 전분 파괴가 지나쳐 식감이 퍼질 수 있다.
냉동한 고구마는 해동하지 않고 그대로 예열된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에 넣어 구워야 한다. 이때 160~170도에서 50분 이상 천천히 익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급하게 높은 온도로 조리하면 효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단맛이 약해질 수 있다.

일반 고구마도 ‘꿀고구마’처럼 만들 수 있다
냉동 후 굽기 방식은 꼭 호박고구마나 당도가 높은 품종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상대적으로 퍽퍽한 밤고구마, 분고구마, 흰고구마도 이 방법을 활용하면 충분히 꿀처럼 만들 수 있다. 특히 오래된 고구마는 수분이 빠지면서 딱딱해지기 쉬운데, 냉동-직화 방식으로 익히면 식감도 부드러워진다.
또한 냉동된 고구마는 구운 뒤 식히면 더 달아지는 특성도 있다. 갓 구운 고구마보다, 실온에서 10~15분 정도 식힌 고구마가 더 진한 단맛을 낸다. 이는 당이 식으면서 구조가 안정화되기 때문이다. 그냥 굽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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