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는 흔히 ‘기분 문제’로 치부되기 쉽지만, 실제로는 전신적인 생리적 변화를 유발하는 정신질환이다. 이로 인해 신체 건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는 수명 단축까지 이어질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세계적인 연구들에 따르면, 중증 우울장애를 가진 사람은 최대 20년까지 평균 수명이 짧아질 수 있다는 통계도 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약을 먹지 않거나 치료를 안 해서가 아니다. 신체 내부에서 벌어지는 스트레스 반응, 호르몬 불균형, 자율신경계 교란 등이 만성 질병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는 핵심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 정신적인 고통이 곧 신체적인 부담으로 전이되는 구조라고 이해하면 된다.

스트레스 호르몬 과다 분비가 심장과 뇌를 약화시킨다
우울·불안 증상이 지속되면 코르티솔, 아드레날린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비정상적으로 분비되기 시작한다. 이 호르몬들은 단기적으로는 생존 반응을 유도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혈압 상승, 심박수 증가, 혈관 수축 등을 유발하면서 심혈관계 질환 위험을 크게 높인다.
심장 질환은 전 세계 사망 원인 1위다. 그런데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심근경색, 협심증, 뇌졸중 등으로 인한 사망률이 훨씬 더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심장 근육에 미세 손상을 반복적으로 가하고, 혈관 내 염증 반응까지 촉진하기 때문이다. 즉, 마음의 병이 심장의 병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면역 기능이 떨어지면서 만성질환과 감염에 취약해진다
우울하거나 불안한 상태에서는 면역세포의 기능이 저하되고, 염증 반응이 증가하는 패턴이 자주 나타난다. 이런 환경에서는 암, 당뇨,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에 더 쉽게 노출되고, 이미 앓고 있는 질환도 더 빠르게 악화될 수 있다. 또 감기나 바이러스 감염 같은 단순한 질병조차 회복이 더딘 경우도 많다.
특히 장기간의 정신질환은 면역계 전체의 밸런스를 무너뜨리기 때문에, 치료받지 않은 채 방치할 경우 노화가 앞당겨지고 세포 재생 능력도 떨어지는 상태로 이어진다. 결국 면역 저하는 단순히 자주 아픈 게 아니라, 질병과 노화의 속도를 가속화하는 치명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정신질환은 건강관리 습관 자체를 무너뜨린다
우울하거나 불안할 때, 사람은 스스로를 돌보는 의욕이 현저히 떨어지는 상태가 된다. 약을 제때 챙기지 않거나, 병원을 미루고, 운동과 식사조차 소홀히 하게 된다. 이런 행동들은 전부 질병의 조기 발견 기회를 놓치게 하고, 생활 습관병의 위험을 높이게 된다.

또한 우울증 환자 중 상당수는 흡연, 음주, 폭식 같은 ‘자기파괴적 습관’을 가지게 되는 경향도 있다. 이는 단순한 기분 전환이 아니라 뇌 기능의 저하와 관련된 패턴이기 때문에 스스로 조절하기도 어렵다. 결국 몸이 나빠질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행동이 반복되면서 건강 수명을 갉아먹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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