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까지만 해도 궤양성 대장염이나 크론병은 극히 일부 사람에게만 생기는 희귀 질환처럼 여겨졌지만, 최근 들어선 20~30대 젊은 층에서도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추세다. 특히 국내 대형병원 통계만 봐도, 10년 사이 청년층 발병률이 3~4배 이상 증가했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게 바로 서구화된 식습관이다. 이전보다 더 자주, 더 많이 먹게 된 패스트푸드, 고지방·고단백 식단, 식이섬유 부족, 가공식품 위주 식생활이 장 건강을 해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단순히 장 트러블 수준이 아니라, 자가면역 반응까지 유발하는 중증 염증성 질환으로 발전하는 배경에는 이런 식습관 변화가 핵심 원인 중 하나다.

서구식 식단은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완전히 뒤흔든다
장에는 면역세포의 약 70% 이상이 분포하고 있다. 그만큼 장내 환경이 몸 전체 면역 상태를 좌우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서구식 식단은 장내 유익균을 줄이고, 유해균의 비율을 높이는 구조로 되어 있다. 특히 고지방, 고당분 식품은 특정 세균종의 폭발적인 증식을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장 점막이 손상되기 쉬운 환경이 된다.
장내 미생물 균형이 깨지면, 장벽의 방어 기능도 약해진다. 이로 인해 독소나 미생물의 부산물이 혈류로 유입되면서 면역계가 과도하게 반응하게 되고, 이때 나타나는 게 바로 만성 염증이다. 크론병이나 궤양성 대장염은 결국 면역 반응이 과도하게 작동해 자기 장기를 공격하는 현상인데, 이 모든 과정에 식습관이 직접 관여하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트랜스지방과 가공식품, 장 점막을 손상시킨다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음식에 들어 있는 트랜스지방, 인공첨가물, 방부제, 유화제 등의 성분은 장내 점막세포에 직접적인 손상을 줄 수 있다. 특히 일부 유화제 성분은 장 점막 사이의 단단한 연결 구조를 느슨하게 만들어 ‘장 누수(leaky gut)’ 현상을 유발한다.
이렇게 되면 장 안에 있어야 할 물질이 혈관으로 넘어가면서 면역계가 위협을 감지하고 과잉 반응하게 된다. 결국 자가면역 질환의 조건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은 이런 상황에서 장 점막을 반복적으로 공격받고, 출혈·설사·통증 같은 증상이 만성화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서구식 식단은 단순한 소화불량의 원인이 아니라, 염증성 장질환을 유발하는 구조적인 위험 요인이라고 봐야 한다.

섬유질이 부족하면 장내 염증이 더 쉽게 퍼진다
우리 몸은 식이섬유를 직접 소화하지 못하지만, 장내 유익균은 섬유질을 먹고 자란다. 그런데 서구식 식단은 대부분 섬유질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는 유익균의 먹이를 줄이고, 장 내벽을 보호하는 ‘짧은사슬지방산(SCFA)’ 생성을 막아 장 염증을 쉽게 유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SCFA는 장 점막의 에너지원이자, 염증 억제 물질로 작용하는데, 섬유질이 부족하면 이 물질의 생산이 급감하게 된다. 결국 장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외부 자극에 취약한 상태로 방치되면서 크론병이나 궤양성 대장염과 같은 염증 질환으로 이어지기 쉬워진다. 문제는 단기간의 식이 변화가 아니라, 청소년기부터 오랫동안 서구식 식단에 노출된 경우 더 위험하다는 점이다.

예방하려면 장내 환경을 먼저 바꿔야 한다
이미 증상이 나타난 경우라면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지만, 아직 염증이 시작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식습관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장 염증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가공육, 튀김류, 정제 탄수화물, 트랜스지방이 많은 식품은 되도록 줄이고, 채소, 통곡물, 발효식품, 수용성 식이섬유가 많은 식단으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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