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은 특별한 원인 없이 반복적인 경련이 발생하는 대표적인 신경계 질환으로, 현재 20여 종 이상의 항경련제가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환자 개개인의 임상 특성에 따라 약물 반응이 크게 달라, 실제로는 약물을 투여해 본 뒤 효과를 확인하고 필요 시 변경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로 인해 치료 지연과 부작용 위험이 발생할 수 있어, 질환 초기 단계에서 치료 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객관적 도구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서울대병원 신경과 박경일·이상건 교수와 융합의학과 김영곤 교수 연구팀은 대규모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항경련제 치료 반응을 예측하는 인공지능 모델을 개발했다. 연구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단일기관 뇌전증 코호트로 알려진 서울대병원 환자 데이터를 활용해 수행됐으며,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진료받은 환자 중 3년 이상 추적 관찰이 가능한 2,600여 명이 분석 대상에 포함됐다.
연구팀은 환자의 초기 진단 시점에서 확보할 수 있는 임상 정보에 주목했다. 분석에는 항경련제 처방 이력, 경련 유형, 뇌 자기공명영상(MRI), 뇌파 검사 결과, 혈액검사 수치, 치료 경과 등 실제 임상 현장에서 수집되는 다양한 정보가 포함됐으며, 총 84개의 변수가 머신러닝 모델 학습에 활용됐다. 주요 분석 대상 항경련제로는 레비티라세탐, 옥스카르바제핀, 발프로산, 라모트리진 등 실제 처방 빈도가 높은 약물이 선정됐다.
모델 설계에는 트리 기반 앙상블 분석 기법이 적용됐으며, 치료 반응성은 항경련제 투여 이후 경련 빈도가 50% 이상 감소한 경우로 정의했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개별 환자의 초기 임상 특성을 바탕으로 특정 항경련제에 대한 치료 반응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했다. 해당 모델은 치료 시작 전 단계에서 약물 선택을 보다 체계적으로 판단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분석 결과, 단일 항경련제 요법 중에서는 발프로산이 가장 높은 치료 반응 예측력을 보였고, 그 뒤를 라모트리진과 옥스카르바제핀이 이었다. 병용요법에서는 카르바마제핀과 레비티라세탐을 함께 사용한 경우가 가장 높은 예측력을 나타내, 특정 약물 조합이 환자 특성에 따라 효과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확인됐다.
또한 연구팀은 인공지능 모델의 해석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샤플리 가산 설명법을 적용해 약물별 치료 반응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를 분석했다. 그 결과 전신 경련을 동반한 환자는 발프로산에 대한 반응 가능성이 높았으며, 비교적 고령에서 발병했거나 유병 기간이 짧은 환자는 라모트리진에 더 잘 반응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항경련제 선택 시 환자의 발병 양상과 질환 경과를 보다 세밀하게 고려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박경일 교수는 “그동안 항경련제 선택은 전문의의 임상 경험에 크게 의존해 왔지만, 이번 연구는 장기간 축적된 대규모 임상 데이터와 인공지능 분석을 결합해 보다 객관적인 판단 근거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향후 다기관 데이터를 추가로 확보해 모델의 범용성과 정확도를 높이고, 실제 진료 현장에서 임상 판단을 보조하는 도구로 발전시키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 최근호에 게재되며, 인공지능 기반 정밀의료가 뇌전증 치료 전략 수립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서울대병원 신경과 박경일·이상건 교수, 융합의학과 김영곤 교수](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6/01/CP-2023-0441/image-c09af98c-e90b-47aa-a485-b05b63b56e60.jpeg)
![[그래프] 항경련제별 분석 건수와 머신러닝 모델을 이용한 치료 반응 예측력(AUC) 비교](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6/01/CP-2023-0441/image-bc102c9f-a882-4cbb-9055-8ff5d6105b8b.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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