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DT의 살아 있는 전설, 바다를 숙명으로 택하다
한주호 준위는 1975년 해군 하사로 입대해 무려 35년을 특수전 여단(현 특전전단)에만 몸담은 정통 UDT 요원이었습니다.
- 1975년 해군 입대, 이후 준사관후보생 과정 거쳐 2000년 준위 임관
- 특공대 팀장, 교육훈련반장, 특임대대 지원반장 등 핵심 보직 두루 역임
- 교육훈련대 교관으로만 18년 근무, 4,000여 명 중 2,000명 가까운 UDT 대원을 제자로 양성
2009년에는 50대 나이에도 “실전을 더 경험하겠다”며 소말리아 파병 청해부대 1진에 자원, 해적 제압작전에 참여하며 전우들에게 **‘사나이 UDT’**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천안함 폭침 다음 날, 스스로 구조대에 이름 올렸다
2010년 3월 26일 밤, 백령도 인근에서 천안함이 폭발·침몰하자 46명의 해군 장병이 실종됐습니다.
당시 한주호 준위는 작전부서가 아닌 작전지원대에 근무 중이었지만, 누구보다 먼저 구조팀에 자원했습니다.
“내가 경험도 많고 베테랑이니 직접 들어가겠다.”
UDT 후배들은 이미 강한 조류와 40m 깊이의 펄바닥, 낮은 수온에 녹초가 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몸 상태보다 바다 속에 갇힌 후배들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오늘 안에 애들 다 건져내겠다” 그 말이 유언이 되었다
3월 30일, 사고 나흘째 되는 날. 한 준위는 동료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안으로 모든 실종자들을 내가 책임지고 구조해내겠다.”
그는 곧바로 함수(배 앞부분) 수색조에 편성돼, 수심 40m, 펄 속에 파묻힌 천안함 내부 진입용 인도줄 설치 작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미 반복 잠수와 장비 부족으로 몸 상태는 한계에 가까웠지만, 구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잠수병으로 실신…미 해군 구조함에서도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그날 오후, 그는 거센 유속과 높은 수압, 펄이 뒤섞인 시야 제로의 환경에서 다시 한 번 물속으로 내려갔습니다. 곧이어 호흡곤란·탈진 증세를 보이며 수중에서 의식을 잃었습니다.
동료들이 급히 끌어올려 인근 미 해군 구난함 **USS 살보(Salvor)**의 감압 챔버로 옮겨 치료했으나, 오후 4시30분~5시경 잠수병(감압병)으로 순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당시 상황을 두고 이렇게 설명합니다.
- 깊은 바다에서 오랜 시간 호흡 시 체내 질소가 많이 녹아들어감
- 급격한 상승·반복 잠수 시 이 질소가 기포로 변해 혈관·장기에 손상
결국,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잠수병의 위험을 감수하고 다시 내려간 것이었습니다.

“자식 같은 애들이 물 아래 있다”…왜 그는 멈추지 않았나
동료 잠수요원에 따르면, 한 준위는 이미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자식 같은 애들이 물 아래 있다”**며 스스로 장비를 들었다고 합니다.
- 나이 53세, 후배들보다 두 배 가까운 경력
- “내가 아니면 누가 들어가겠냐”는 책임감
- 실종자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한 명이라도 더 건져 올리고 싶었던 마음
어쩌면 그는 자신의 몸이 돌아오기 힘들 수 있다는 걸 알고도 물속으로 들어갔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한마디가 더 뼈아프게 남습니다.
“오늘 안에 애들 다 건져내겠다.”

영원한 UDT의 스승, 천안함 47번째 희생자가 되다
국방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고, 언론과 군은 그를 **“천안함 46용사와 함께 기억해야 할 47번째 용사”**로 불렀습니다.
- 2011년, 창원 진해루 해변공원(해군교육사령부 인근)에 고 한주호 준위 동상 제막
- 해군은 매년 3월 30일, 동상 앞에서 추모식·제막 기념식 거행
- ‘해양수호 영웅상’ 중 **‘한주호상’**을 제정, 매년 최우수 특전요원에게 수여
동상 속 그는 **“불가능은 없다”**라는 특전전단의 구호를 배경으로, 여전히 굳게 총을 쥐고 바다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질문들
그의 순직 이후, 구조체계와 안전규정 미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컸습니다.
- 사고 당시 감압 챔버까지 이송 과정이 16분이었는지, 30분 이상이었는지를 두고 군·유가족 진술이 엇갈리며 논란
- 세월호 참사 때, 다시 한 번 “무리한 잠수·2차 인명피해” 문제 제기
하지만 이런 논쟁과 별개로, 한주호 준위의 선택 자체는 분명했습니다.
작전지원부서에 있었음에도 “내가 직접 들어간다”며 자원했고,
몸이 망가져 가는 걸 알면서도 “내 자식 같은 애들”을 두고 돌아서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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