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보사 장교가 ‘광고 사업가’로 갈아입다
박채서는 원래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대북 공작장교로, 제3국을 통해 북한 관련 첩보를 수집하던 인물이었다. 이후 안기부로 특채돼 대북 공작 실무를 맡으면서, ‘편승공작’, 즉 북한 사업에 관심 있는 남한 사업가에 올라타 북한에 침투하는 방식의 공작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광고 프로듀서 출신 박기영을 포착했고, 그의 대북 광고 구상을 이용하기로 했다.

‘아자 커뮤니케이션’으로 정체를 세탁하다
1995년 12월, 박채서는 박기영과 함께 **북한 전문 광고기획사 ‘아자 커뮤니케이션’**을 설립하고 자신은 전무로 위장 취업했다. 회사 뒤에는 미진아이디를 운영하던 정진호 등 자본이 붙었고, 통일원에는 정상적인 대북 광고사업자로 등록됐다. 안기부는 아자를 대북 공작 플랫폼으로 삼아 북한 고위층과의 창구로 활용했다.

“백두산·금강산 배경 광고 찍게 해주겠다”는 제안
1996년 1월, 박채서는 베이징으로 날아가 북한 대외경제 기관 간부 리철(실명은 장성택 라인으로 알려짐)을 만나 “남한 기업 광고를 백두산·금강산에서 촬영하게 해주면 북한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은 외화벌이에 목마른 북한 수뇌부의 관심을 끌었다. 실제로 1997년 2월, 아자는 베이징 캠핀스키 호텔에서 북한의 금강산 국제관광총회사와 평양·백두산·금강산·묘향산 등지 광고 촬영 5년 독점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북한이 ‘사업가’ 흑금성을 최고급 초대소로 대접하다
계약 이후 박채서 일행은 북한 초청을 받아 서해안 서재동 초대소·금강산호텔 등 외국 귀빈용 시설에 묵으며 북한 전역을 둘러보는 파격 대우를 받았다. 백두산·금강산·평양 시내를 자유롭게 다니며 촬영 위치를 답사했고, 이 과정에서 북한 내부 통행증을 발급받아 사실상 일반 외국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이동 자유를 누렸다. 이는 남측 공작원이 북한 전역을 합법 신분으로 다닌 매우 이례적인 사례로 꼽힌다.

김정일을 직접 만나 녹음까지 했다는 증언
월간지와 인터뷰 기록에 따르면, 박채서는 이 시기 김정일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이를 녹음한 내용까지 안기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장성택 형인 장성우 인민군 중장의 아들 장현철 등 권력 핵심 2·3선 인물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김정일 라인 깊숙이 파고들었다. 공작 목표는 단순 사업이 아니라 북한 핵개발·권력 구조에 대한 최상위 정보 수집이었다.

북한 핵개발 완성 정황을 서울로 빼냈다
박채서는 평양과 중국을 오가며 북한 고위층으로부터 핵개발 진척 상황과 군사 전략 관련 언급을 듣고, 이를 안기부에 보고했다는 증언이 다수 전해진다. 당시 한국 정보당국은 그의 공작 보고를 토대로 북한이 플루토늄 기반 핵무기 개발을 상당 부분 완성했다는 평가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북 소식통은 “그의 보고 수준이 미국 정보기관의 분석 자료와 거의 일치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총풍·북풍’로 공작이 드러나며 실체가 공개됐다
그러나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안기부 윗선이 북한을 이용해 **휴전선 총격 도발(총풍)과 대선 개입(북풍)**을 시도한 사건이 터지면서, 박채서의 존재도 함께 세상에 노출됐다. 언론은 그를 암호명 **‘흑금성’**이라 부르며, 북한에 위장 포섭된 특수 공작원이라고 보도했다. 당시 공개된 문건에는 그가 북한에서 받은 지시를 따르는 형식으로 국내 정치권에 접촉한 정황도 포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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