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제품만 사겠다더니, 하루아침에 ‘직접 만들겠다’로 바뀐 나라”
국산 전투기 KF-21 보라매의 첫 수출 상대는 예상대로 인도네시아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런데 인도네시아는 단순 구매를 넘어 “우리도 일부를 직접 만들겠다”고 먼저 제안하며, 수출국이 생산에까지 참여하는 이례적인 모델을 스스로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 입장에서는 까다로운 파트너였던 인도네시아가, 이제는 동남아 생산·수출 거점이 될 수 있는 ‘게임 체인저’로 다시 등장한 셈이다.
“48대에서 16대로 줄었지만, 첫 수출이라는 상징성은 그대로”
인도네시아는 애초 KF-21 체계개발 단계부터 공동개발국으로 참여하며, 개발비 20%를 부담하고 현지 생산 방식으로 48대를 들여올 계획이었다. 하지만 분담금 미납과 재정난이 겹치면서 부담액이 약 1조6,000억 원에서 6,000억 원 수준으로 줄었고, 도입 계획도 48대에서 우선 16대 구매로 축소됐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달 말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 방한 시점에 KF-21 16대 수출 협약(MOU)을 체결하는 방안을 추진 중으로, 국내 개발 전투기의 첫 해외 수출이라는 상징성은 변함이 없다.

“시제기 1대 넘겨주고, 일부 부품은 인도네시아가 만든다”
양국은 지난 2월 KF-21 공동개발 사업의 ‘가치 이전’ 방안에 실무 합의를 마쳤다. 핵심은 시제기 6대 중 1대를 인도네시아에 양도하고, 그 가치를 포함해 총 6,000억 원 규모의 기술·자료 이전 패키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수출 물량과는 별도로 일부 기체 부품을 인도네시아 국영 항공우주기업 PTDI가 생산해 한국으로 공급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즉, ‘비행기의 심장부’인 핵심 설계·조립·시험은 한국이 쥔 채, 구조물 및 특정 부품 생산을 인도네시아에 할당하는 하청·분업 구조가 검토되는 셈이다.
“KT-1이 먼저 밟아본 길… 완제품 수출에서 ‘현지 생산 수출’로”
이런 모델은 한국에게도 처음이 아니다. 국산 기본훈련기 KT-1이 이미 터키·페루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수출된 바 있다. 터키에는 40대 중 5대만 한국에서 완제품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터키항공우주산업(TAI)이 동체를 제작해 KAI가 공급한 날개·핵심 부품과 함께 현지 조립하는 구조를 택했다. 페루에서도 KT-1P 20대 중 16대가 현지 조립 방식으로 생산되면서, 페루 공군 전력 보강과 동시에 자국 항공산업 역량 강화에 기여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은 “완제품만 파는 나라”에서 “생산·기술 파트너를 키워주는 나라”로 이미 한 단계 진화해 있었다.

“KF-21은 KT-1보다 훨씬 어렵다… 그래서 더 까다롭게 나눈다”
다만 KF-21은 KT-1보다 요구되는 기술 난도가 훨씬 높다. 초음속 비행, 스텔스 형상, 첨단 전자장비와 복합재 구조가 결합된 4.5세대급 전투기이기 때문에, PTDI의 현지 생산 역량이 어느 수준까지 따라올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하다. 이 때문에 양국은 핵심 비행제어·엔진·레이더·미션컴퓨터 등 ‘두뇌와 심장’은 한국이 전담하고, 비교적 난도가 낮은 구조물·내장부품 위주로 인도네시아 참여 범위를 제한하는 방식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 주도권은 한국이 유지하되, 인도네시아는 ‘배워가며 생산’하는 형태다.
“인도네시아는 비용을 줄이고, 한국은 수출·채권 리스크를 줄인다”
그럼에도 인도네시아가 굳이 생산 참여를 고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일부 부품을 자국에서 생산하면, KF-21 도입 과정에서 자국 기업에 일감을 주고, 전체 사업비 중 일부를 ‘산업 투자’로 환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인도네시아의 재정 부담을 낮춰주는 대신, 지연됐던 분담금 정산과 수출 대금 지급을 보다 안정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구조가 된다. “우리가 직접 만들겠다”는 인도네시아의 요구가, 과거 미납 문제로 흔들렸던 공동개발 사업을 ‘현지 생산+수출 파트너’ 모델로 되살리는 안전판이 되는 셈이다.

“동남아 교두보 KF-21, 인니가 ‘거점’이 될 수 있을까”
동남아에서 노후 전투기 교체를 추진하는 국가는 말레이시아·필리핀·태국 등 적지 않다. 이미 한국은 FA-50을 필리핀·태국 등에 수출하며 이 지역에 항공기 운용·정비 인프라를 쌓아 왔고, KF-21이 실전 배치되면 상위급 전투기 시장까지 노릴 채비를 하고 있다. 이때 인도네시아가 KF-21 부품 생산과 MRO(정비·수리·분해점검) 허브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 동남아 인근국 입장에서는 “한국+인도네시아” 패키지를 통해 가격 경쟁력과 지역 유지보수 네트워크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생긴다. KF-21 첫 수출이 단지 16대 계약에 그치지 않고, 동남아 전체 시장을 겨냥한 장기 전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한때 ‘먹튀’ 논란이던 파트너, 이제는 수출 전선을 함께 여는 파트너로”
KF-21 개발 과정에서 인도네시아는 분담금을 제때 내지 않아 ‘먹튀 논란’의 중심에 섰고, 사업 자체가 흔들린다는 비관론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시제기 1대 양도와 가치 이전, 축소된 분담금 재조정, 16대 수출 협상과 부품 현지 생산 논의까지 이어지면서, 양국은 공동개발을 ‘공동 생산·공동 수출’ 단계로 넘기는 새로운 해법을 모색 중이다. 숫자만 보면 16대는 크지 않아 보이지만, 이 첫 단추가 제대로 꿰어지면, KF-21은 동남아에서 FA-50이 그랬던 것처럼 ‘지역 표준 전투기’로 성장할 발판을 얻게 된다. “내가 직접 만들겠다”던 인도네시아의 돌변이, 결국 한국 방산 수출의 지형을 한 단계 넓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이제 남은 것은 올 상반기 협상 테이블에서 찍힐 사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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