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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없이 불 끄는 기술,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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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를 진압하는 가장 전통적인 방법은 물이다. 하지만 전기 화재나 기름 화재처럼 물이 오히려 위험을 키우는 상황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물 없이 불을 끄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최근에는 물을 대체할 다양한 기술이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 소방서는 지난달 말 음파를 이용해 불을 끄는 소화 기술을 시연했다. 소방서는 민간 업체 소닉 파이어 테크사와 연계해 음파 소화 기술 도입을 추진해 왔다.

소리를 이용해 불을 끄는 것은 SF 영화 속 이야기 같지만, 불의 연소와 확산을 막는 획기적인 방법으로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물이 모든 화재 현장에 적합하지 않은 데다, 막대한 수자원을 낭비할 일도 없어서다.

기술의 원리는 연소 자체를 성립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주둥이가 긴 이 기기는 강풍으로 낙엽을 날려버리는 특수 청소 장비처럼 생겼다. 때문에 바람으로 불을 끈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으나, 엄연히 음파로 불을 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엔지니어도 제작에 참여한 이 장비는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 초저주파음을 발생해 불의 확산을 막는다. 화재 현장의 산소를 음파로 진동하고, 연소의 화학반응을 무너뜨리는 것이 기술의 핵심이다.

소닉 파이어 테크 관계자는 “연료가 되는 물질과 산소가 결합하면 연소라는 화학반응이 일어나는데, 이를 우리는 불이라 부른다”며 “이 반응은 연료, 산소, 열의 균형에 의해 유지되고, 이게 무너지면 불은 계속 타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장비는 적외선 센서가 불을 감지하면 초저주파음을 발생해 불 주변의 공기를 미세하게 떨게 만든다”며 “그 진동으로 산소 상태가 흐트러져 연소에 적합한 균형이 무너진다. 연소를 유지할 수 없게 돼 결과적으로 불이 꺼진다”고 덧붙였다.

20㎐(헤르츠) 이하의 초저주파음은 사람 귀에 들리지 않지만 주변에 분명한 영향을 준다. 지하철이 빠르게 눈앞을 통과하거나 바람이 강하게 불 때 드는 느낌이 대표적이다. 이 초저주파음은 불의 중심부를 약화하기 충분한 위력을 가졌다.

현재 이 기술은 주택용으로도 개발되고 있다. 초저주파음 발생기를 주방 천장에 배치하고 센서를 부착해 화재에 감응하는 방식이다. 회사는 기존 살수 시스템을 대체할 유력한 선택지가 초저주파음이며, 미국 전역의 보급도 기대된다는 입장이다.

음파를 응용한 소화 기술은 전에도 고안됐다. 미국 조지메이슨대학교 공대생 세스 로버트슨과 비엣 트란은 2015년 실험 보고서를 내고 음파를 이용해 불을 끈 성과를 전했다.

이들은 30~60Hz 저주파를 이용해 불꽃 주변의 산소 밀도를 교란하고 연소를 유지하는 경계층을 붕괴할 수 있다고 봤다. 실험에서는 알코올로 붙인 작은 불씨를 스피커만으로 껐다. 미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 역시 음파 같은 전자장비로 화재를 진압할 가능성을 연구했다.

음파 외의 소화 기술로는 전기장이 거론된다. 불꽃은 이온화한 입자를 포함해 전기장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공학·응용과학대학원(SEAS)은 2011년 홈페이지에 조사 보고서를 내고 전기장을 이용한 소화 기술을 소개했다.

SEAS 연구팀은 고전압 전기장을 통해 불꽃 내부의 전하를 이동하고, 연소 반응을 유지하는 자유 라디칼(비공유 전자를 가진 원자나 분자, 이온)을 분산해 불을 껐다. 이 방법은 물이나 화학 약제를 사용하지 않아 전자장비 보호에 유리하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물 외의 소화 기술이 개발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물 사용 시 감전 및 장비 손상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유류 화재의 경우 물이 오히려 불을 확산하고 우주 등 밀폐된 환경에서는 물 사용 자체가 제한된다. 데이터 센터, 반도체 공장 등 특수 환경은 물보다 비접촉·비손상 소화 기술이 필수다.

현재까지 음파나 전기장 소화 기술은 작은 불을 제압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때문에 아직은 분말·가스식 소화기가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미래 화재 대응은 물 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물리·화학적 방법을 결합해야 한다고 본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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