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대신 ‘전쟁터’를 택한 청년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서울대 합격 통보를 뒤로하고 육군사관학교 43기를 선택한 특이한 이력의 군인 출신 정보요원이다. 1964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그는 “국가 수호”를 이유로 엘리트 코스를 버리고 군인의 길로 들어섰고, 이후 특전사 707특수임무대대 중대장·국정원 블랙요원·차관급 정보수장까지 올라섰다. 그의 삶은 말 그대로 ‘이름 없는 전쟁터’를 평생 직장으로 택한 사례다.

707특임대 중대장, 참수·대테러 최전선
육사 졸업 후 그는 육군특수전사령부 예하 707특수임무대대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했다. 이 부대는 대통령·요인 경호, 항공기 납치·인질 구출, 적 지휘부 참수·전략시설 파괴까지 담당하는 최정예 대테러·특수침투 부대로, 미 델타포스 등과 합동 훈련을 진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홍장원은 폭파·침투·근접전 훈련을 지휘하며 부대 내에서 “프로페셔널”로 통했고, 장군 진급이 유력하다는 평가 속에서도 어느 순간 군을 떠나 정보전 세계로 향하게 된다.

“특수부대도 약하다” 블랙요원 30년 선택
1990년대 초 예비역 소령으로 전역한 그는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에 특별 채용돼 해외 공작·대테러 담당 블랙요원으로 발탁됐다. 블랙요원은 외교관·무역관 등 공식 신분을 쓰는 화이트요원과 달리, 신분 자체가 드러나지 않는 비밀공작 인력을 뜻한다. 홍장원은 아프리카·중동 등 순직자가 나올 정도로 위험한 지역에 자원해, 와해된 대북·대테러 HUMINT(인간정보)망을 재건하는 공로를 세웠고, 현지에서 블랙요원 최초로 간부 특진까지 이뤄냈다는 증언이 뒤늦게 나왔다.
국정원 넘버2까지…‘정보 공작의 달인’
안기부·국정원에서 그는 해외 공작 파트와 원장 비서실, 주영국 대사관 정무공사 등 화이트·블랙 라인을 두루 거쳤다. 박근혜 정부 시절 이병기·이병호 원장 비서실장을 지냈고, 이후 원장 대북특보로 대북 정보·정책조율을 담당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2023년 11월 국가정보원 제1차장으로 임명돼 방첩·대테러·대외정보 수집을 총괄했으며, 정보기관 내부에서도 “현장 공작을 가장 많이 뛰어본 1차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국회 투입? 707은 참수용 무기다”
707특임대 출신으로서 그는 최근 계엄령·비상계엄 논란 때 강한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언론 인터뷰에서 홍장원은 707특임대의 본질을 “국회 진압이 아니라 참수·대테러에 특화된 ‘칼’”이라고 규정하며, 정치적 목적의 투입 가능성에 우려를 표시했다. 특수부대를 정쟁 도구처럼 간주하는 인식에 대해 “이건 미친 짓”이라 직설적으로 비판한 대목은, 그가 여전히 ‘군인 마인드’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난세가 부른 진짜 군인, 이름 없는 전쟁터의 상징
홍장원의 이력에서 반복되는 키워드는 “이름 없는 헌신”이다. 서울대 합격증을 접고 육사를 택한 결정, 707특임대에서의 고강도 작전·훈련, 그리고 국정원 블랙요원으로 30년 가까이 해외 공작 현장을 떠나지 않은 경력까지. 본인의 이름이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차관급 1차장에 오른 뒤와,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증언을 하면서부터였다. 그 전까지 그의 공적 기록은 대부분 비공개였고, 스스로도 “존재 자체가 기록되지 않는 전쟁터였다”고 회고한다.

지금도 현역 같은 은퇴자, 여전히 안보를 말한다
1차장 퇴임 후에도 그는 방송·강연을 통해 군·정보·대테러 이슈에 대해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12·3 비상계엄 지시 상황에서의 내막을 폭로하며, “정보기관이 정치 권력의 사유물이 되어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해 주목을 받았다. 동시에 후배 군·정보요원들에게는 “직책보다 중요한 건, 위기 순간 나라 쪽에 서는 판단”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서울대 대신 육사를, 장군 대신 블랙요원을 택했던 그의 이력은, 그런 메시지가 빈말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로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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