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공은 아니지만…KADIZ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신경전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은 영공보다 바깥쪽에 임의로 설정된 감시선으로, 국제법상 주권이 미치는 영공과는 구분되지만 외국 군용기가 접근할 경우 조기 탐지·식별·경고를 위한 ‘완충 지대’ 역할을 한다.
따라서 KADIZ 진입 자체가 곧바로 영공 침범은 아니지만, 관례상 다른 나라 군용기가 들어올 때는 사전 비행계획과 위치 통보가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중국과 러시아가 이 관례를 사실상 무시한 채, 군용기를 대규모로 KADIZ 안팎에 들락거리며 군사·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5년간 430회 넘게 ‘무단 진입’…최대 연 130회까지 뛰었다
국회와 군 자료에 따르면 중국 군용기는 2020~2024년 5년 동안 사전 통보 없이 한국 KADIZ에 총 430여 회 진입했다. 연도별로 보면 2020·2021년에는 연 70여 회, 2022년 60여 회 수준이었지만, 2023년에는 130여 회로 두 배 가까이 급증했고 2024년에도 90여 회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2023년의 경우 “한 달 평균 10회 이상, 사실상 상시 진입 상태”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고, 일부 기간에는 반년이 채 안 돼 60여 회를 넘긴 사례도 확인됐다. 중국은 이 같은 활동을 “정례적 훈련”이라고 주장하지만, 한국 입장에선 영공 근접 비행과 장거리 폭격기·전투기·정찰기의 혼합 운용으로 이어지는 ‘실전형 압박 시연’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러시아도 열흘에 8번…중·러 연합 비행으로 동해·남해 압박
러시아 군용기의 KADIZ 진입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2020~2024년 약 5년 동안 러시아 군용기가 사전 통보 없이 KADIZ에 진입한 횟수는 50~60여 회 수준으로, 특히 2025년 3월에는 열흘 사이 8차례나 동해 KADIZ에 연속 진입해 울릉도 북방 영공 외곽 약 20km 지점까지 근접 비행하기도 했다.
러시아 공군은 우리 측 교신에 응하지 않거나, “훈련 목적이며 영공 침범 의사는 없다”고만 반복하는 경우가 많아 국방부가 주한 러시아 국방무관을 초치해 항의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중국 공군과의 연합 공중훈련 명목으로 양국 군용기 10여 대가 동시에 KADIZ에 진입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으로, 2024년 11월에는 중국·러시아 군용기 11대가 동해·남해 KADIZ에 진입해 한국 공군이 전투기를 긴급 출격시킨 바 있다.

“하늘의 회색지대 도발”에 한국은 전투기 즉각 출격으로 대응
한국군은 KADIZ 무단 진입에 대해 비례 대응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공군은 중국·러시아 군용기 움직임을 조기경보레이더·지상 레이더·E-737 조기경보통제기 등으로 실시간 추적하고, KADIZ 진입이 확인되면 F-15K·KF-16 등 전투기를 긴급 출격시켜 근접 감시·전술기동·무장 과시로 대응한다.
국방부는 필요 시 해당국 국방무관 초치, 유선 항의, 외교 채널 경고까지 병행하며 “영공 침범 시에는 즉각 타격도 불사한다”는 방위 의지를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다만 KADIZ 자체는 국제법상 주권 구역이 아닌 만큼, 지나치게 강경한 군사 대응은 상대의 역공 명분이 될 수 있어, 군사적 긴장 관리와 주권 수호 사이에서 매번 미세한 ‘수위 조절’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중국판 글로벌호크’ 우전-7 투입…방공망에 새로운 난제
최근에는 중국이 공중 위협을 전투기·폭격기에서 고고도 무인정찰기까지 다변화하고 있다. 조선일보·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2023년과 2024년, 고고도 정찰 무인기 ‘우전(WZ)-7’ 여러 대를 이어도 북동쪽 KADIZ에 진입시켜 남해 상공을 장시간 비행시켰다.
WZ-7은 최대 7,000km 이상을 비행하며 약 18km 고도(기사 오타를 제외하면 통상 18km 전후로 추정)에서 감시정찰이 가능한 기종으로, 미국의 글로벌호크급 성능을 목표로 개발된 것으로 평가된다. 고고도에서 장시간 체공하면서 레이더·통신·해상활동을 광역 감시할 수 있어, 한국·일본·대만 인근에서 정보 수집과 동시에 “방공망 대응 패턴을 떠보는 용도”로 활용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통보 없이 들어오는 중국’ vs ‘정보 공유하는 일본’…더 복잡해지는 하늘
흥미로운 것은, 한국 KADIZ에 가장 많이 진입하는 군용기는 사실 일본이라는 점이다. 2020~2023년 4년 동안 일본 자위대 군용기는 한·일 중첩 방공식별구역에 약 2,610여 회 진입했으며, 연평균 650회 수준에 달했다.
다만 일본은 자국 방공식별구역과 겹치는 중첩 구역을 비행할 때 한국 측과 비행정보를 사전에 공유하는 경우가 많아, “통보 없이 들어오는 중국·러시아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 군·외교 당국의 설명이다. 반대로 중국은 KADIZ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사실상 상시 진입을 통해 한국 방공망과 대응 패턴을 실험하는 이중 행태를 보이고 있다.

방공식별구역을 둘러싼 ‘뉴 노멀’…한국이 준비해야 할 것
결국 연간 60~130회에 이르는 중국의 무단 진입, 열흘 사이 8차례 KADIZ를 넘나드는 러시아 군용기, 그리고 고고도 무인기 WZ-7까지 가세한 상황에서,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은 더 이상 예외적 긴급 상황이 아니라 “매일 관리해야 하는 회색지대 전장”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은 한미일 안보 협력과 정보공유를 강화하고, 장거리 레이더·조기경보체계·무인기 대응 전력을 고도화하는 한편, 중국·러시아와의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군사 핫라인·통신 절차를 유지·보완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자칫 “방공망이 뚫렸다”는 과장된 위기감과 “KADIZ는 영공이 아니라 별 일 아니다”라는 안이한 인식 모두가 위험한 만큼, 숫자와 패턴, 의도를 냉정하게 읽어내는 장기적·입체적 대응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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