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원 60명짜리 화물선에 14,000명을 태우고 떠난 배가 있었습니다. 그 배에서 단 한 명도 죽지 않았어요.
1950년 12월 흥남철수 작전과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잘 알려지지 않은 5가지를 위키·VOA·KBS 다큐 자료를 토대로 정리했습니다.

1950년 12월 15~24일 — 군 10만 + 피난민 10만 철수
흥남 철수작전은 6·25전쟁 중 1950년 12월 15일부터 24일까지 함경남도 흥남에서 미군 10군단과 한국 육군 1군단 약 10만 명, 그리고 피난민 약 10만 명을 남쪽으로 옮긴 작전입니다. 단일 철수 작전으로는 세계사에서 가장 큰 규모입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 — 정원 60명, 화물선 한 척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정원이 60명인 미국 상선 화물선이었습니다. 이미 선원 47명이 타고 있어 13명만 더 태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 배에 라루 선장이 14,000명의 피난민을 태우기로 결심했습니다.

12월 22~23일 — 14,000명 승선, 카운트는 도중에 포기
12월 22일 밤부터 23일까지, 미군 구축함의 엄호 사격 속에 라루 선장과 승무원들이 피난민을 한 명씩 끌어올렸습니다. 사무장 로버트 러니에게 “1만 명까지 세라”고 지시했지만, 1만 명을 넘은 뒤 1만 2,000~1만 3,000명에서 카운트를 포기했다고 전해집니다.

크리스마스 날 거제도 도착 — 사망자 0명, 출산 5명
추위와 굶주림 속에 항해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195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했습니다. 14,000명 중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고, 항해 중 다섯 명의 아기가 새로 태어났습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배” — 기네스북 등재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단일 항해로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배로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됐습니다. 라루 선장은 훗날 수도사가 됐고, 가톨릭에서 시복(諡福)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왜 이 항해가 “기적”으로 불릴까요?
60명 정원 → 14,000명 승선, 추격하는 적군과 영하의 바다, 단 한 명도 죽지 않은 결과. 어느 한 가지만 있어도 기록인데, 그 모두가 한 항해에서 일어났습니다. 한국전쟁사가 잊지 못하는 24시간입니다.
60명 자리에 14,000명을 태운 그 배가, 한국 한 시대의 마음을 함께 실어 날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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