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도심 아래 숨어 있던 ‘육군·해군 항공기지’
당시 광주해군항공기지의 활주로는 지금의 광주시청에서 약 1km 떨어진 서구 일대, 상무·화정 주변까지를 포함하는 거대한 규모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옛 일본군 배치도와 미군 항공사진을 현대 지도 위에 다시 얹어보면, 활주로·격납고·보급시설 위치가 지금의 시가지와 상당 부분 겹친다.
이는 광주가 단순 지방도시가 아니라, 일본이 대륙 침략과 태평양전 전개를 염두에 둔 ‘후방 항공 허브’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료고·폭탄고·지하 동굴… 주택가 아래 군수 기지가 있었다
10여 년 전 화정동 일대에서는 항공기 연료고로 추정되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마륵동에서는 폭탄고로 보이는 시설이 발굴됐다.
주택가·학교 인근에서는 정체불명의 지하 동굴·갱도가 여럿 확인됐고, 조사 결과 상당수가 탄약·연료·예비 부품 등 군수 물자를 저장하거나 항공기 지원기지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이러한 동굴·지하창고는 평시엔 철저히 숨겨진 시설이었고, 공습·포격 시에도 살아남도록 설계된 ‘전시 버팀목’이었다는 점에서 단순 창고 이상 의미를 갖는다.
![무등의 아침] “발로 뛰며 찾아낸 일제 군사시설 수백 개…광복 80주년에 확인한 일제의 전쟁 야욕”](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6/05/CP-2025-0398/image-9bda9bf2-eb91-43d9-869f-32cead96d670.jpeg)
5·18기념공원 지하까지 이어지는 콘크리트 갱도망
전문 분석업체가 옛 일본군 지도와 미군 정찰사진, 지형 자료를 종합 분석한 결과, 지금의 서구 5·18기념공원 지하를 포함한 광범위한 구역에 격납고 및 지하시설이 퍼져 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들 구조물은 두꺼운 콘크리트로 축조돼, 80년이 지난 지금도 붕괴 없이 상당 부분 원형이 유지된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
상무지구 개발 과정에서도 이런 지하시설 대규모 철거 기록이 뚜렷이 남아 있지 않아, 단지 위를 덮어버린 채 매몰된 구조물이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문서로 확인된 “광주 초대형 항공기지 건설 계획”
취재·연구를 통해 확보된 당시 군사 문서와 공사 계획표에는, 일제가 전쟁 수행을 위해 광주에 대규모 항공기지를 건설했다는 기록이 명시돼 있다.
문서에는 활주로·격납고·탄약고뿐 아니라, 지하시설을 별도로 구축해 철저한 은폐와 방호를 도모하라는 지침도 포함돼 있다.
즉, 광주항공기지는 단순 비행장 아니라, 폭격·정전·포격 상황에서도 항공전을 지속하기 위한 ‘지하 복합기지’ 개념으로 설계된 셈이다.
![사설] 한국인이 中서 정보기관 촬영했다면 어떻게 됐겠나](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6/05/CP-2025-0398/image-17362c19-8733-4888-afd3-dee2f628abb1.jpeg)
광주라는 공간이 갖는 군사 전략적 의미
서남해안 일대의 군사시설 발굴 작업과 맞물려 보면, 일본은 해안 요새뿐 아니라 내륙 핵심 거점인 광주까지 연계한 입체적 전쟁 준비를 해 온 것으로 보인다.
광주항공기지는 내륙에서 출격해 서해·남해·중국 대륙 방면으로 뻗어나가는 중간 허브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광주가 단지 행정·교육 도시가 아니라, 제국 일본의 전쟁 전략 지도 위에 찍혀 있던 ‘군사 타깃·거점’이었다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매몰된 군사 도시”에서 역사·교육 자산으로
이제 광주항공기지 관련 지하시설들은 근대 군사사 연구, 도시사 연구는 물론 지역 역사문화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
지자체와 연구기관 일각에서는 5·18기념공원 일대와 연계해, 일부 지하시설을 보존·복원하고 시민에게 개방하는 방안, 일제 군사 침탈과 전쟁 범죄를 알리는 평화기념관·전시공간 조성 등을 논의 중이다.
“밟고 다니지만 보지 못했던” 지하 군사시설을 드러내는 일은, 일제 전쟁 준비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현재의 도시 공간이 품은 역사적 층위를 재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앞으로 필요한 것: 체계적 조사·보존·안전 점검
여전히 어디에 무엇이, 어느 정도 규모로 남아 있는지에 대한 정밀 조사는 초기 단계에 가깝다.
도시 개발과 안전 문제를 고려하면, 매몰된 대형 동굴·탄약고가 구조적으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지, 유해 물질·잔존 폭발물이 없는지에 대한 안전 점검도 병행돼야 한다.
그와 동시에, 무조건 메워 없애기보다 역사·교육적 가치가 큰 일부 구간은 보존·전시를 통해 “광주라는 도시가 어떻게 전쟁과 식민, 민주화의 무대로 겹겹이 겹쳐져 왔는지”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재로 삼는 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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