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2척, 일본은 6척?”…K-방산을 정면으로 겨누는 라이벌
동남아 방산 시장, 특히 필리핀 해군 현대화 사업을 둘러싼 경쟁 구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카드가 등장했다.
일본이 퇴역 예정인 아부쿠마급 호위함을 최대 6척까지 한 번에 넘기는 방안을 필리핀과 논의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한국이 어렵사리 신형 호위함 2척을 수출해 ‘텍스트북 성공 사례’를 만든 사이, 일본은 “구형이라도 6척 묶음 패키지”를 앞세워 물량 공세에 나서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한국이 한 척 한 척 고부가가치 함정을 쌓는 사이, 일본은 중고 군함으로 숫자를 채우며 영향력을 넓히는 방식을 택했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일본이 들고 나온 카드, ‘아부쿠마급 6척 패키지’의 속내
이번 논의의 핵심은 일본 해상자위대의 2,000톤급 연안 호위함, 아부쿠마급이다.
이 함정들은 1980년대 후반부터 실전 배치된 대잠수함전(Anti-Submarine Warfare) 특화 호위함으로, 이미 30년을 훌쩍 넘긴 노후 전력이다.
일본은 자국 해군 주력 전력을 신형 모가미급 다목적 호위함으로 갈아타는 과정에서, 애매하게 남는 이 ‘올드 타이머’들을 한꺼번에 정리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필리핀 이전 논의는 바로 이 시점에 등장했고, “어차피 퇴역시킬 전력을 동남아 우방국에 이전해 정치·군사적 영향력을 강화하자”는 계산이 얹힌 형태로 읽힌다.

남중국해 견제?…겉으론 ‘안보’, 속으론 ‘시장 진입’
일본이 내세우는 공식 명분은 단순하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해양 팽창을 견제하려는 미국·필리핀 연합 구도에 일본도 보조를 맞추겠다는 ‘안보 지원’ 프레임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헌법과 각종 원칙에 묶여 있던 일본이 무상 공여·초저가 매각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동남아 방산 시장에 본격 진입하려 한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즉 “우리는 안보를 도와주는 것뿐”이라는 외피 아래, 실상은 “중고 군함이든 뭐든 보내서 일본제 군사 시스템에 익숙해지게 만들자”는 전략이 깔려 있는 셈이다.
필리핀 해군, 지금까지는 ‘K-방산의 텃밭’이었다
문제는 이런 일본의 접근 방식이 한국 입장에선 정면 도전이라는 점이다.
현재 필리핀 해군의 핵심 전력은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해 인도한 2,600톤급 호세 리잘급 신형 호위함으로, 사실상 ‘필리핀판 K-핵심 레퍼런스’다.
이와 별도로 초계함, 원해경비함 사업까지 한국 조선업체가 연달아 따내면서, 필리핀은 그동안 “K-방산이 공들여 일군 대표 시장”으로 평가돼 왔다.
이 판에 일본이 “한 번에 6척, 그것도 거의 공짜에 가까운 조건”을 들고 들어오면, 예산이 빠듯한 필리핀 입장에선 매우 매력적인 옵션이 될 수밖에 없다.
성능은 한국 우위지만…‘6척 패키지’의 유혹은 다르다
냉정하게 보면, 30년 넘은 아부쿠마급은 최신 한국산 호위함과 직접 성능 비교를 하기 어렵다.
아부쿠마급은 연안 대잠전에 최적화된 구성이어서, 통합 레이더·센서·다목적 임무 수행 능력 측면에선 신형 한국 함정이 한 세대 이상 앞선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필리핀처럼 국방 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가에겐, “신품 2척 VS 중고 6척”이라는 단순한 숫자 싸움이 더 직접적인 고민거리가 된다.
“지금 당장 바다 위에 깃발을 꽂을 수 있는 선체 수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는 정치·군사적 압박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이 2척 팔 때, 일본은 ‘거의 공짜로 6척’…룰이 바뀌고 있다
한국 조선업계는 신조(新造) 함정을 제값 받고 파는 구조에 최적화돼 있다.
기술·성능·수명에서 우위를 내세우는 대신, 일정 수준 이상의 단가를 확보해야만 사업성이 맞는 모델이다.
반면 일본은 퇴역 예정 전력을 사실상 처리하는 차원에서, “무상 또는 상징적 가격”으로 다량 제공하는 전략을 택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이 어렵게 협상해 신형 2척을 수출하는 사이, 일본은 ‘재고 떨이’ 방식으로 6척을 한 번에 밀어 넣는 구조가 만들어지며 시장 룰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중고 군함, ‘싸게 사서 비싸게 유지’하는 함정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6척 패키지가 무조건 필리핀에 이득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중고 군함은 도입 단가는 싸더라도, 남은 수명이 짧고 각종 시스템이 노후화돼 있어 유지보수·개량에 드는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부품 수급도 문제다. 같은 급이 일본 내에서도 순차 퇴역하는 상황이면, 시간이 갈수록 부품 조달과 기술 지원을 위해 일본에 더 깊이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장기적인 전력 건설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필리핀 군 수뇌부라면, ‘당장 6척’의 유혹과 ‘10~20년 뒤 전력 구조’를 두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진짜 승부는 “다음 사업”에서 난다
이번 일본의 아부쿠마급 이전 논의는 당장 한 번의 거래를 넘어, 누가 필리핀의 장기 파트너로 자리 잡느냐를 가르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일본 입장에서는 중고 군함을 미끼로 삼아, 향후 신형 함정·레이더·무장 체계까지 ‘패키지 업그레이드’를 노리는 장기 전략을 그릴 수 있다.
한국으로서는 기존에 쌓아 온 신뢰와 성능, 유지보수 인프라를 전면에 내세워 “값싼 중고 6척”과 “비싸지만 오래 가는 신형 2척”이라는 프레임을 어떻게 뒤집을지가 관건이다.
결국 이번 필리핀 해군 사업은, 한국과 일본이 동아시아 방산 시장에서 어떤 포지션으로 굳어질지를 가늠하게 해 줄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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