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극한직업” 된 북한, 엘리트 직군의 몰락
북한에서 오랫동안 ‘지식인 계층의 꽃’으로 불리던 학교 교사들이 이제는 대표적인 극한 직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학생 교육보다 각종 행사 준비와 실적 채우기에 내몰리면서, 교단의 위상은 눈에 띄게 추락했다. 특히 최근에는 “나는 교사인지, 전시용 장난감 제작자인지 모르겠다”는 자조가 나올 정도로 현장의 피로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한국 교사들이 겪는 행정 과부하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 북한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교구재 전시회가 만든 ‘밤샘 노동’
올여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열릴 예정인 ‘교구재 전시회’는 이런 모순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겉으로는 교육 혁신 성과를 뽐내는 자리지만, 실제로는 일선 교사들에게 끝없는 제작 노동을 강요하는 국가 주도 경쟁 무대에 가깝다. 각 학교 관리자는 상급 기관의 평가를 의식해 교구재 수량과 수준을 과도하게 요구하며, 그 부담은 고스란히 평교사들에게 전가된다. 전시회가 다가올수록 교사들의 퇴근 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교실 불빛은 톱질과 풀칠이 끝나는 시각이 돼서야 꺼진다.
![클로즈업 북한] 높은 지위, 열악한 처우…속 타는 선생님](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6/06/CP-2025-0398/image-168d9046-6395-4acc-88f2-cc5f2ddc70bf.jpeg)
전공 무시한 ‘무조건 할당’의 폭주
특히 문제인 것은 전공과 무관한 교구재 제작까지 일괄 지시된다는 점이다. 영어·한문 교사처럼 벽에 붙일 간단한 차트만으로도 충분한 과목 담당자들에게, 생물·물리·화학 등 실험 중심 과목의 시범 도구를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오는 식이다. 실험 장비를 다뤄본 경험이 없는 인문계 교사까지 모형 제작에 동원되면서, 밤샘 작업 끝에 만들어진 교구재가 실제 수업에는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보여주기 평가에 맞춰 숫자를 채우는 데 급급한 탓에, ‘누구를 위한 교육 혁신인가’라는 회의감만 깊어지고 있다.

엘리트 지식인에서 ‘잡무 노동자’로
과거 북한에서 교원은 국가가 특별히 우대하는 엘리트이자, 학생들의 학업·사상 교육을 책임지는 존경받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지금 교사들의 하루 일과는 수업 준비보다 각종 문서 작성, 행사 동원, 전시회 준비가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구조로 변했다. 방과 후 보충 지도나 개별 상담은 뒷전으로 밀리고, 교실 대신 작업실과 창고에서 톱질·가위질에 매달리는 시간이 늘고 있다. 교사 스스로도 “학생을 키우는 교원이라기보다, 실적을 꾸미는 잡무 노동자에 가깝다”는 냉소를 감추지 못한다.

하향식 지시 구조가 만든 무한 경쟁
이 같은 왜곡의 뿌리에는 북한 특유의 하향식 지시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 평양 교육 당국이 ‘새 교수방법 창조’와 ‘교육 성과 확대’를 포괄적으로 지시하면, 도·시 단계에서는 이를 구체적인 실적과 경쟁 지표로 치환한다. 그 결과 각 지역 교육기관은 앞다퉈 더 많은 전시·경연을 기획하고, 그 부담을 학교 관리자와 교사들에게 내려보낸다. 교장은 상급 기관에 보여줄 실적을 위해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고, 실무자인 교사들은 그 할당량을 맞추느라 수업의 질을 스스로 깎아 먹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인재 양성’ 구호와 교실 현실의 괴리
북한 당국은 수시로 “미래를 책임질 인재 육성”을 강조하지만, 교사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그와 정반대 방향에 가깝다. 각종 국가 행사, 동원령, 보고서 작성과 전시 준비가 겹겹이 쌓이면서, 정작 수업에 집중할 여유와 환경은 보장되지 않는다. 평가 기준도 학생 이해도나 수업 품질이 아닌, 행사 실적과 교구재 수량·완성도로 왜곡돼 있다. 현장의 교사들 사이에선 “교단을 장악해야 할 것은 교사가 아니라 서류와 지시문”이라는 자조 섞인 불만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무너지는 교사 정체성과 북한 교육의 민낯
지금 북한 교사들에게 가장 큰 위기는 단순한 과로가 아니라, 자신의 직업 정체성이 붕괴되고 있다는 감각이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기보다, ‘또 어떤 전시품을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올까’를 먼저 걱정해야 하는 구조에서 교육에 대한 사명감은 점점 희미해진다. “내가 교육자인지, 행정 실무자인지 모르겠다”는 토로는 북한 교육 시스템이 얼마나 전시성과 실적 위주로 기울어 있는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교사가 교육의 중심이 아니라, 상부 지시를 실물로 구현하는 도구에 머무는 한 북한이 말하는 ‘인재 강국’ 구호는 공허한 선전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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