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 이룬 것 같은데 마음이 허전한 시기가 온다. 자식들도 자리 잡았고, 건강도 큰 문제는 없고, 경제적으로도 그럭저럭 괜찮다. 그런데 이상하게 감정이 무뎌지고, 뭔가를 봐도 예전처럼 감동이 없다. 체력 문제라고 생각해서 운동을 늘려봐도 그 허전함은 그대로 남는다.

젊을 때는 취업, 결혼, 육아, 경제적 안정처럼 분명한 목표가 삶을 이끌었다. 목표를 향해 가는 동안에는 그 자체가 의미가 됐다. 그런데 그 목표들을 다 이루고 나면 다음에 뭘 향해 가야 할지가 막막해진다. 성취가 끝난 자리에 의미가 채워지지 않으면 공허함이 자리를 잡는다.

이 변화는 인간관계에서도 보인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보다 편안한 사람과 보내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사회적 평가나 성공보다 이게 나한테 맞는 삶인지를 먼저 묻게 된다. 평생 책임감 있게, 참고 견디며 살아온 사람일수록 감정을 오랫동안 억눌러왔기 때문에 이 시기에 그 감정들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이건 의지가 부족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오랫동안 쌓인 감정과 삶의 방향에 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만족감은 더 멀어진다. 옆집 부부가 여행 다니는 모습, 친구 자녀의 성공 소식이 오히려 자신을 더 작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회복의 시작은 더 열심히 사는 게 아니다. 잠시 쉬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피로가 아니라 삶의 방향이 어긋났기 때문일 수 있다. 무엇을 할 때 가장 편안한지, 누구와 있을 때 가장 즐거운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족과 일을 우선하며 살아온 사람일수록 자신의 욕구를 가장 마지막에 챙겨왔다는 걸 이 시기에 깨닫게 된다.

공허함은 실패의 신호가 아니다. 앞으로의 삶을 다시 설계하라는 변화의 신호에 가깝다. 진정한 만족은 더 많은 성취가 아니라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에 맞춰 사는 데서 찾아온다. 지금 느끼는 메마름이 끝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자리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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