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을 살아오던 내가.
어느날, 문득, 갑자기,
암환자가 되었다.
내가 유방암 환자가 되었다.

내 블로그에 기록하길 좋아하는 내가, 단 한번도 기록하지 않은 이야기.
“유방암……”
내 인생을 한순간 멈추게 만들었던, 가장 강력한 터닝포인트가 되어버린 유방암.
현재 내 주변지인들도 잘 모르는 이야기.
내가 암환자였었다라는 걸 측근 중 몇몇만 알뿐. 친척들도 모르는 이야기.
내가 암에 걸렸었고, 아팠었고, 정말 아픈 시간을 보내왔었다라는 이야기. 너무 아팠던 시기라, 입밖으로 감히 꺼내지도 못했던 이야기.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이제는 나와 같은 고통의 시간을 겪었던 사람에게도 이야기 할 수 있을만큼, 물컹하고 터질 것만 같았던 내 마음이 조금은 단단해졌으니깐…
몇 년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회사에서 해주는 건강검진이 아닌. 나라에서 해주는 건강검진이 아닌. 내 돈으로 문득 내 몸 전체 검강검진을 해보았다.
아파서 건강검진을 했냐고? 그건 아니였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였었다. 회사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있는 상태. 너무너무 힘들었다 회사가. 특히.. 회사팀장님이. 일도 힘든데, 사람은 더 힘들었다.
그래서 하나로의료재단에 가서 내돈내산으로 검진을 받았었다. 그때 건강검진을 받았던 내 상태를 말해보자면,
1. 입안이 헐어서 구내염이 생겼음에도 낫지를 않고, 구내염 범위가 점점 커졌다. 이비인후과에 가니 어떻게 구내염이 이렇게 안낫냐고 하실 정도 였으니.
2. 야근하면서 피자를 먹어도, 떡볶이를 먹어도, 생각한 만큼 살이 찌지 않고, 계속 그 상태로 유지되었다. 밤늦게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내가 살이 안찌는 체질로 바뀐지 알았다.
내가 그런지 알았다. 그냥 받아본 건강검진.
설마.. 내가 아프지는 않겠지라는 마음 하나로 그냥 내가 가서 받아본 전체건강검진.
그런데, 그 검진에서 유방에 결절이 보인다라는 소견이 있었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소견일뿐”이었는데. 나는 찝찝했다. 클리어하게 명쾌하게 그 검진소견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냥 넘어가지 않고, 회사근처 유방외과를 뒤져서 굳이 조직검사 하러 갔다. 그리고 며칠 뒤 조직검사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주말내내 “나 별일 없겠지? 그래, 별일없을거야” 그 말만 되뇌였다.
조직검사 결과를 보기로 한날. 엄마랑 같이 검진결과를 듣기로 했다.
나는 회사에서 병원으로. 엄마는 집에서 병원으로 가서 병원 1층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회사반차를 내고 병원으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병원에서 전화가 울린다.
순간… 느낌이 쎄해졌다……
나 지금 지하철타고 병원가고 있는데, 오늘 몇시까지 의사 만나기로 했는데, 굳이 이 시간에 왜 나한테 전화하지??
“00님, 00병원입니다.”
“네, 지금 병원가고 있는데 왜 전화주셨죠? 왜요..? 혹시……저 암이예요?”
“네…암으로 나왔어요. 00님.. 빨리 병원에 오세요.”
쎄한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암이라고 한다. 그런데 조직검사해보니, 유방암 중에서도 순한암이라고, 수술만 하면 된다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만 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그렇게 유방암 환자가 갑자기 되었다. 암환자.. 말로만 듣던 암환자. 내가 암환자가 갑자기 되었다.
병원결과를 들을때 엄마도 같이 갔었는데, 나는 눈물흘리고 있는데, 울엄마는 울지도 않고 덤덤하게 위로해주셨다.
“괜찮아, 수술만 하면 된다쟎아. 수술하면 없어진데. 울지마“라고…그리고 식당에 나를 데리고 가서는, 엄마가 “밥먹어.. 밥먹자..” 라고 그렇게 점심식사를 했다.
밥먹는 내내, 집으로 가는 내내, 괜찮다고 덤덤하게 말해주셨다. 엄마도 속으로는 울었을텐데, 내가 슬퍼하고 우니까, 굳세게 덤덤하게 계셨던 것 같다.
엄마가 덤덤하게 말해주셔서 그나마 괜찮았던거 같다. ‘맞아. 수술만 하면 된다쟎아?’ 이 말로 나를 다스렸다. 수술만 하면 되니까. 그래 수술만 하면 괜찮아질거야.라고 되뇌이고, 또 되뇌였다.
회사사람에게도, 회사팀원들에게도 유방암을 숨긴채, 그냥 간단한 수술을해야 되서 병가내야해 라고만 말하고, 병가를 3개월 내고, 수술하러 들어갔다.
그런데, 내가 병가내고 들어간 그 당일날. 내가 속한 팀장님이 술자리에서 내가 극도로 숨기고 싶은 나의 그 비밀을 “걔 유방암걸려서 수술받으러 병가낸거야”라고 팀원들에게 폭로하시고, 다른 팀사람들에게도 말하고.
내가 병가내고 그 날 저녁에 회사의 몇백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의 병을 알아버렸다.
그 사실을 듣게 되고, 난 팀장님께 왜 내가 숨기고 싶었던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폭로하셨냐고 여쭤보니, 돌아오는 한마디.
“어차피 인사총무팀이 너 유방암인거 알면, 회사 사람들은 어차피 다 알텐데??” 라는 매몰찬 대답뿐.
몸이 아픈 내게, 마음을 더 아프게 하신 그 대답이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너무나도 내겐 잔인했다. 정말 내겐 차가웠다. 정말 나를 더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기분이였다.
나는 그 날로, 회사사람들에겐 또 하나의 가십거리가 되었다.
“걔 있쟎아, 00팀 그 사람, 유방암이래” 라는 말. 화장실에서도 사람들이 주고 받았다는 말들. 어느 자리에서도 주고받았다는 말들이 아픈 나에게, 끊임없이 내 귀까지 들어왔다.
내가 걸린 암이, 회사 다른 사람들에게는 쉬운 가십거리가 이렇게나 되는구나….. 그들에게는 그저 쉽게 나눌 수 있는 가십거리일뿐…
참고로, 나를 아프게 한 팀장님, 그 팀장이라는 사람은 우리팀 다른 팀원이 갑상선암에 걸리니 그 직원에게 하신 말도 가관이었다.
“야~ 너 좋겠다, 갑상선암에 걸려서 회사에서 암진단금 받으니깐!”
이게 갑상선암에 걸린 자기 팀 직원에게 할말인가….??? 지금까지도 이 말 역시 그 팀원에게는 상처가 되어 남아있다. 제발 멈춰줘- 그 입에서 나오는 쓰레기 같은 말-
힘든 마음 추스리고 수술을 했고, 암을 떼어내고, 떼어낸 암조직을 검사했는데, 수술만 하면 끝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악성암이 섞여있는데, 항암치료를 해야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3개월 병가가 아닌, 1년 가까이 병가를 제출했다. 그리고, 항암치료를 하고 정말 힘들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터널이니까, 곧 터널끝이 나올거야 말하면서 나를 달랬다.
이런 과정속에 제일 고마웠던 사람은 아무래도 가족.
가족중에서도 정확하게는 특히 고마운 두 사람…
한명은 우리 엄마.
다른 한명은 내 동생.
나의 치료가 시작되자마자 우리 엄마는 나를 밀착해서 케어해주셨다. 항암치료로 못먹는 나를 위해, 물도 못삼키는 나를 위해 매끼 어떻게 해야 뭐라도 먹일까 싶어서 계속 요리하시고.. 또 요리하시고. 나 주물러주시고. 마사지도 해주시고..
내가 항암치료로 무너져서 엉엉 우는 순간에, 문사이를 가운데에 두고 같이 울어주시고. 잘때도 깨어있는 순간에도 나를 전적으로 케어해주는 단 한사람. 우리 엄마.
우리 엄마였다. 다 큰 딸이 아프다고 하니, 정말 아기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나를 돌봐준 사람.
그리고, 또 한명 고마운 가족은 내 동생.
하나뿐인 내 동생. 회사 퇴근하고 힘들텐데 그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수시로 병원에 와서는 “누나 괜찮아?”라고 물어봐주고, 먹을거 수시로 사주고.
괜찮냐고 물어봐주고 계속 힘내라고 힘돋아주던 사람.
고마워 내 엄마-
고마워 내 동생-
덕분에 내가 버틸 수 있었어. 그 터널같은 시간을. 그 암흑같은 시간을.
지금 기록하면서도 그때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서 눈물만 나온다..
눈물이 나오는걸 보니 스스로 많이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물컹한 마음도 남아있었나보다…
Blog Tip. 이 글에 이어서, 유방암치료과정 및 유방암이야기, 그리고 암환자가 되면서 겪었던 수 많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더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기록할 2편은 곧 7월에 기록해볼게요..
그 누군가에게는 저의 한낱 작고 작은 아픈 이야기가 또 하나의 희망이 되길. 또 하나의 깊은 공감이 되길. 그 마음에 닿길.
#모두의회고
#가족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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