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을 바쳐 자식을 길러낸 부모에게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존재이지만, 나이가 들고 기력이 쇠해지면 그 사랑은 때때로 깊은 원망과 미움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자식에게 기대를 버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노후의 태도라고들 하지만, 막상 닥친 현실 앞에서 부모들은 서운함을 넘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늙어가는 부모가 자식을 보며 가장 큰 원망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을 냉정하게 짚어보고, 그 이유를 분석해 본다.

자식 뒷바라지에 평생의 재산을 쏟아붓고 정작 본인의 노후 자금이 부족해진 부모에게, 자식의 외면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어렵게 사는 것도 아닌데 부모의 최소한의 생활비조차 지원하려 하지 않거나, 되려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모의 돈까지 탐내는 자식을 볼 때 부모는 처절한 배신감을 느낀다.
자식에게 쏟은 사랑이 결국 나를 갉아먹는 독이 되었다는 깨달음은 부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자식들은 다 컸으니 각자의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지만, 고독한 노년의 일상을 보내는 부모에게는 한 달에 한 번 오는 짧은 연락조차 간절한 생명줄과 같다.
명절은커녕 평소에도 연락 한 통 없는 자식을 보며 부모는 내가 과연 자식을 키운 게 맞는가 하는 근본적인 회의감에 빠진다.
자신을 잊고 사는 자식들의 무심함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깊은 마음의 병을 부모에게 안겨준다.

늙어서 부모가 자식을 가장 미워하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은, 바로 몸이 아파 병원을 찾아야 할 때 자식이 귀찮은 기색을 역력히 드러낼 때다.
또 아프시냐, 이제는 병원 가는 것도 지친다는 식의 차가운 말 한마디는 부모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내가 이제 자식에게 짐 덩어리가 되었구나라는 굴욕감을 느끼게 한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자식에게 짐이 되는 상황인데, 그 상황에서 자식마저 나를 짐으로 취급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부모의 사랑은 미움으로 바뀐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부모의 인격까지 작아지는 것은 아니건만, 일부 자식들은 부모를 판단력이 흐려진 존재로 취급하며 명령조로 대하거나 가르치려 든다.
부모의 인생관이나 살아온 방식 자체를 부정하며 시시콜콜 비판하는 자식들의 태도는 평생을 지켜온 부모의 자부심에 큰 흠집을 낸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자식의 잣대로만 부모를 평가할 때, 부모는 더 이상 그들을 따뜻한 자식으로 대할 수 없다.

자식의 사정을 봐주느라 시작한 손주 육아가 어느덧 당연한 의무로 굳어지고, 부모의 개인적인 삶은 완전히 실종되어 버릴 때 부모는 깊은 회의에 빠진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더 많은 육아를 요구하며 부모의 시간을 가로채는 자식을 볼 때, 부모는 자식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뺏기고 있다는 억울함을 느낀다.
사랑으로 시작한 일이 노동으로 전락하고, 그 노동이 당연시될 때 부모의 마음속에는 서서히 미움의 씨앗이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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