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 사용권 헌법 명시의 의미
새 헌법 89조에 “핵무력에 대한 지휘권은 국무위원장에게 있다”는 조항이 신설됐다는 점은, 김정은에게 핵 사용 결정권을 헌법 차원에서 부여했다는 뜻입니다.
이는 기존 ‘최고영도자’의 관행적 권한을 넘어서, 핵 사용을 포함한 전략무기 운용 권한을 최고지도자에게 법적으로 집중시키는 조치로, 핵무력을 체제 존립의 최종 보루이자 김정은 권력의 핵심 수단으로 규정한 것이기도 합니다.
또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사용권을 위임할 수 있다”는 조항은 김정은 해외 방문, 통신 차단 상황 등을 상정해, 핵 지휘 체계가 지도자 부재 시에도 작동하도록 만들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결국 핵 버튼을 둘러싼 권한 구조를 헌법으로 고착시키며, 핵무력을 김정은 개인 권력과 직결된 ‘절대 무기’로 공식화한 셈입니다.
남북 ‘두 국가 관계’와 통일 조항 삭제
북한은 새 헌법 2조에서 영역을 “북쪽으로 중국·러시아,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영토와 그에 기초해 설정된 영해와 영공”으로 규정해, 남북을 각각 별도의 국가로 보는 시각을 헌법에 반영했습니다.
기존 9조에 있던 “북반부 인민정권 강화”와 “조국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한다”는 통일 관련 조항, 그리고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이라는 이른바 ‘조국통일 3대 원칙’도 모두 삭제됐습니다.
이는 김정은이 2023년 말부터 강조한 남북 ‘두 국가 관계론’을 헌법 문구로 제도화한 것으로, 남북관계를 더 이상 같은 민족 내부의 분단 상태가 아닌 사실상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재정의하려는 전략입니다.
다만 “교전국 관계”나 “남조선 전 영토 평정” 같은 거친 표현은 헌법에는 넣지 않아, 최고 문서의 외형만큼은 다른 국가들 헌법과 비슷한 ‘정상국가적’ 외피를 유지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토 조항 신설과 NLL 문제의 애매한 처리
북한은 헌법에 처음으로 영토 조항을 신설하면서, 자국 영토가 중·러와 대한민국에 접한다는 점을 명시했지만, 해상·공중 경계선은 구체적으로 적지 않았습니다.
이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부정해 연평도·백령도 등 서해5도 해역 전체를 북측 수역이라고 주장해 온 기존 입장과 충돌을 피하기 위한 선택으로 해석됩니다.
김정은이 NLL을 “국제법적 근거나 합법적 명분도 없는 유령선”이라 비난한 전례를 감안하면, 헌법에 영해 조항을 넣어 NLL을 노골적으로 무력화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할 경우 정전협정·국제법 논쟁이 커지는 부담을 고려해 수위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육상·해상 경계선은 여전히 정전협정과 군사적 관행에 의존하면서, 헌법에는 모호한 표현만 남겨 외교·법적 논란을 최소화하려 한 셈입니다.

김정은의 권한 집중과 ‘국가수반’ 지위 강화
새 헌법의 또 다른 특징은 김정은 권한을 전반적으로 대폭 강화했다는 점입니다.
기존 헌법에서 국가기구 구성은 최고인민회의를 1절, 국무위원장을 2절에 배치했지만, 새 헌법은 처음으로 국무위원장을 국가기구 1절에 올려 ‘서열 1위’로 명시했습니다.
또 국무위원장을 ‘최고영도자’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수반’으로 재정의하고, 최고인민회의가 채택한 법령에 대한 거부권을 부여하는 한편, 최고인민회의가 갖고 있던 국무위원장 소환권은 없앴습니다.
외국 대사의 신임장 접수권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서 국무위원장으로 옮기는 등, 외교·입법·인사 권한을 김정은에게 집중시켜 그의 실제 권력 구조와 헌법 문구를 일치시키려 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군·국방 조항 강화와 ‘전민 항전’ 기조
러시아 파병 이후 개정된 헌법에서는 군과 국방에 대한 조항이 한층 강화된 것도 눈에 띕니다.
“국가와 사회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 대상에 ‘해외 군사 작전 참전 열사 유가족’ 등이 포함돼, 해외 파병 경험과 연계된 희생·유가족 보호를 헌법으로 끌어올린 모양새입니다.
또 “국가는 국방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고 온 사회에 군사 중시 기풍을 세우며, 전민 항전 준비를 빈틈 없이 갖추도록 한다”는 조항을 신설해, 전 국민을 포괄하는 총력전·게릴라전 준비 기조를 헌법상 목표로 명시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핵·미사일을 포함한 전략무기 강화, 군사·국방 과학 중시, 전시 총동원 체제를 하나의 국가 목표로 묶어, ‘핵·전민 항전 국가’ 이미지를 제도적으로 고착시키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사회·복지 조항 축소와 경제 현실 반영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사회주의 복지 선전 문구가 크게 줄었다는 점입니다.
과거 헌법에 있던 “세금이 없어진 우리나라”, “실업을 모르는 우리 근로자”, “무상치료제” 등 사회주의식 무상 복지·완전 고용을 강조하는 표현은 삭제됐습니다.
근로자의 생활 조건을 국가가 “마련해 준다”는 조항은 “마련해 주기 위해 투쟁한다”는 문구로 교체돼, 실제 경제·복지 여건을 감안한 보다 간접적인 표현으로 바뀌었습니다.
다만 새로 다자녀 여성 우대 조항을 명시해, 출산·인구 문제를 의식한 보상·우대 정책을 헌법에 반영한 점은, 인구·노동력 확보를 중시하는 현실적 고민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상국가화’ 외피와 대외 전략 노림수
북한은 헌법 명칭에서 ‘사회주의 헌법’이라는 표현을 빼고 단순히 ‘헌법’으로 바꾸며, 국호·영토·공민 자격을 앞부분에 배치하는 등 다른 국가들 헌법과 비슷한 틀을 일부 채택했습니다.
서울대 이정철 교수 등은 이를 “북한을 정상국가화하는 차원에서, 외형적으로는 다른 나라 헌법과 유사한 형태를 띠도록 정비한 것”으로 평가합니다.
동시에 남북 ‘두 국가 관계’와 김정은의 핵 사용권, 전민 항전·국방 과학 강화 등을 헌법에 집어넣어, 핵·군사 중심 국가 정체성과 1인 권력 체제를 제도적으로 굳혔다는 점에서, 대외적으로는 협상 여지를 좁히는 강경 신호로도 볼 수 있습니다.
적대적 표현을 헌법에는 넣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교전국 관계’·‘대한민국 제1의 적대국’ 인식을 유지하는 이중 태도는, 향후 미국 등과의 관계 변화를 염두에 두고 외교·이미지 관리의 여지를 남겨둔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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