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대신 총을 잡은 126명의 소녀들, 대한민국 최초 여군 ‘해병 4기’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다.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려난 절박한 상황 속에서, 같은 해 8월 제주도에서 특별한 청년들이 조국을 구하기 위해 일어섰다. 바로 대한민국 해병대 3기와 4기 모집이었다. 이때 3,000여 명의 제주 출신 남학생들과 함께, 펜 대신 총을 잡겠다고 자원입대한 126명의 여성이 있었다. 이들이 바로 대한민국 최초의 여군이자, 해병대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성 해병 4기’다.
당시 입대한 여성들의 나이는 겨우 15세에서 20대 초반에 불과했다. 고순덕 해병4기여군전우회 회장은 당시 제주여자중학교 2학년(15세)의 나이로 학업을 중단하고 군복을 입었다. 어린 여중생·여고생부터 초등학교 교사까지, 조국이 처한 비극 앞에서는 나이도 직업도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1950년 9월 1일, 이들은 부모의 눈물을 뒤로한 채 제주항에서 해군 상륙함(LST)에 몸을 싣고 진해 해군통제부로 향했다.
진해 신병교육대에 도착한 여성 대원들에게 ‘여자’라는 이유로 주어지는 특혜는 없었다. 당시 해병대 기강과 훈련은 혹독하기로 유명했다. 앳된 소녀들은 무거운 카빈총을 멘 채 땅바닥을 포복하고 단독무장 구보를 소화했다. 대열에서 한 명이라도 뒤처지면 수백 명이 단체 기합을 받는 엄격한 군율 속에서 눈물을 삼키며 군인으로 거듭났다.

훈련을 마친 해병 4기 여성 대원들은 최전방으로 출동하는 남성 해병대원들을 대신해 후방의 핵심 임무를 맡았다. 이들은 주로 행정 및 서무 업무를 비롯해, 보급 및 후방 지원, 통신 및 간호를 담당했ㄷ.
당시 해병대사령관은 “현장으로 출동하는 남자 대원들을 대신해 여자들에게 행정과 후방지원을 맡기면 좋겠다”며 이들의 입대를 허용했고, 여성 대원들은 그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하며 인천상륙작전과 도솔산 전투 등 해병대의 신화적인 승리를 뒤에서 묵묵히 보좌했다.
전쟁이 끝난 후 이들은 순차적으로 전역했으며, 1955년 1월 이순덕 중위를 끝으로 126명 전원이 민간인의 삶으로 돌아갔다. 이후 해병대는 오랫동안 여군을 모집하지 않았기에, 이들은 해병대 역사에서 매우 독보적이고 상징적인 존재로 남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백발의 할머니가 된 이들이 해병대 행사에 참석하거나 부대를 방문하면, 수십 년 후배인 현역 해병대 장병들은 물론 장성들까지 일제히 거수경례를 하며 최고의 예우를 갖춘다. 이는 단순히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다. 나라가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에 스스로 해병의 길을 선택하고, 최초의 여군으로서 길을 개척한 대선배를 향한 해병대 특유의 깊은 존경심과 ‘해병대 정신’의 발로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청춘을 바친 제주 여성 해병 4기의 헌신은 대한민국 해병대 역사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자랑스러운 이정표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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