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울 앞에 서서 굽은 등과 거칠어진 손을 내려다보다 문득 허무해진 적이 있다. 남들보다 잘 살아보겠다고, 가족 고생 안 시키겠다고 뼈를 깎으며 살아온 사람이 많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그렇게 독하게 산 사람보다 오히려 적당히 여유 부리며 산 사람이 노년에 더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열심히 사는 게 정답이라 믿었던 그 방식이 사실 자신을 더 병들게 한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 마음속엔 내 가족의 미래까지 내가 통제해야 한다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자식 뒷바라지에 모든 걸 바친 사람이 있다.
학업부터 결혼까지 하나하나 다 확인하고 관여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런데 정작 자녀들은 그 사랑을 간섭으로 느끼고 숨 막혀 했고, 남은 건 텅 빈 통장과 쑤시는 몸뿐이었다.

반면 자식이 성인이 되자 마음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이 있다. 젊을 때 못 해본 취미를 배우고 매일 산책하며 자기만의 즐거움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자녀들이 먼저 찾아오고 존경의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아등바등 붙잡으려 할수록 오히려 관계는 더 어긋난다는 걸 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보여준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습관도 마찬가지다. 부잣집 친구를 평생 부러워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남편의 빚 때문에 밤새 울며 전화를 걸어온 걸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겉으로 화려해 보여도 그 안에는 누구에게나 남모를 근심이 있다. 행복의 기준을 내 안이 아니라 바깥에 두는 순간 늘 부족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과거의 실수를 만회하려고 현재를 갈아 넣는 것도 비슷하다. 젊어서 사업에 실패한 기억 때문에 일흔이 넘어서도 쉬지 않고 일한 사람이 있다.
자식들은 건강만 챙기라고 애원했지만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지난 일은 이미 굳어버린 시멘트와 같아서 아무리 후회해도 형태를 바꿀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먼저다.

매사에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도 결국 자신을 팽팽하게 조이는 일이다. 평생 자식들 앞에서 엄한 모습만 보이던 사람이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야 가족들이 자신을 흉보지 않고 품어준다는 걸 깨달았다.
그 후로 아프면 아프다, 모르면 모른다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했고 집안 분위기가 오히려 따뜻해졌다. 완벽함을 내려놓는 순간 사람 사이의 정은 더 끈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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