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더불어민주당]](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6/07/CP-2024-0091/image-bbbb3c46-0152-4e49-b296-12552bd4ff5a.jpeg)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어머니를 향한 마음을 전하며 공천 탈락 이후의 시간을 회상했다.
18일 정 전 대표는 SNS에 “10년 전 2016년 3월 10일, 저는 컷오프 공천 탈락했다”며 “그 충격과 당혹감으로 6일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원들의 분노와 응원으로 핸드폰을 켤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어 “‘내 사전엔 이혼과 탈당은 없다’고 했고, 탈당의 ㅌ자도 생각이 없었지만 ‘앞으로 나는 어떡해야 하나?’로 혼미한 상태였다. 제일 먼저 떠오른 분이 어머니였다”고 회상했다.
또 “어머니, 이럴 때 저는 어떡해야 하나요? 어머니, 아버지, 장인, 장모님 네 분의 영정사진을 서재에 모셔놓고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자주 드린다”며 “어머니께 여쭤봤는데도 사진 속 어머니는 슬픈 표정으로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당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원들의 당 지도부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고, 저에 대한 응원의 물결이 총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며 “수십 명의 국회의원들이 전화를 했다. 공천받은 국회의원 후보들은 ‘정청래 잘라놓고 무슨 염치로 표 달라고 하냐’며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난처한 상황이라며 어쩌면 좋으냐고 공천 탈락해 쓰러져 있는 저에게 하소연했다”고 적었다.
이어 “도종환 의원께서 마지막으로 전화를 했다. ‘정 의원, 지금은 감동과 울림이 필요해요. 다른 사람은 다 필요없고 정청래가 지원유세를 다녀야 해요. 그런 감동과 울림을 꼭 만들어 줘요’라고 말씀하셨다”고 소개했다.
정 전 대표는 “당 지도부는 저를 버렸지만 저는 당을 지키겠습니다. 제가 총선 승리의 제물이 되겠습니다. 총선 지원유세도 다니겠습니다. 총선 현장에서 만납시다”며 “곧바로 충북으로 달려갔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더컸유세단이었다. 정말 열심히 지원유세를 다녔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지원유세 요청이 쇄도했다”고 했다.
또 “1석 차이로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했고 민주당이 제1당이 됐다. 국회의장을 민주당이 할 수 있었다. 보람이 컸다”며 “사람들은 저를 선당후사의 아이콘이라고 평가해 주셨다. 그렇지만 저의 현실은 전직 국회의원 신분으로 4년을 사는 고난의 세월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잠시라도 잊으려고 땡볕 아래 텃밭에서 땀으로 눈물로 농작물을 키웠다. 혼자 운전을 하다가 길가에 세워놓고 남몰래 참 울기도 많이 했다”며 “장사익의 ‘찔레꽃’을 따라 부르면 자꾸 어머니가 생각나 슬프고 눈물이 났다. 장사익의 ‘님은 먼 곳에’를 따라 부르면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아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또 “그래도 이를 악물고 4년간 MBN ‘판도라’, KBS ‘사사건건’, MBC라디오, YTN라디오 등 거의 매일같이 방송에 출연해 문재인 정부를 홍보하고 방어했다. 강연도 많이 다녔다. 열심히 살았다”고 말했다.
이어 “당대표 시절 3월 10일이 되어 10년 전 저의 백의종군 선언 동영상을 보았다. 저도 깜짝 놀랐다”며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듯이 당의 주인은 당원입니다. 당원이 주인인 정당을 만들어야 합니다. 집 나간 주인들은 속히 집으로 돌아와 주십시오’라고 했던 당시 발언도 소개했다.
그러면서 “컷오프 공천 탈락한 지 10년이 지나서 제가 당대표가 되어 10년 전 백의종군할 때 했던 말을 똑같이 말하고 있었다”며 “10년 전 제가 국민주권, 당원주권을 현재의 언어와 똑같이 말했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웠다”고 밝혔다.
또 “1인1표는 이렇게 십수 년의 고난을 겪으며 만들어진 소중한 제도”라며 “당원주권의 상징인 1인1표제로 시행되는 첫 번째 전당대회가 다가온다. 저는 오직 국민, 오직 당원만 믿고 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어렵지 않은 인생이 없고,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 도종환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흔들리며 피는 꽃처럼, 바람과 비에 젖으며 피는 꽃처럼 우리네 사랑도 삶도 다 흔들리며 젖으며 가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끝으로 “흔들리며 가는 KTX 안에서 이 글을 쓰면서 어머니를 생각한다”며 “어머니, 요즘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 ‘괜찮냐?’고 묻는다. 어머니,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힘들지 않냐? 잘 버텨라’고 말한다. 그리고 슬픈 눈으로 저를 쳐다본다. 우시는 분들도 많다. 어머니, 이럴 때 저는 어떡해야 하나요?”라고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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