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정점으로 치닫던 6월 29일 오전,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포성이 울려 퍼졌다. 북한 경비정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제2연평해전이었다.
화염에 휩싸인 참수리 357호정 안에서 스물한 살의 젊은 의무병은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갑판을 기어 다녔다.

자신도 온몸에 파편이 박히는 중상을 입었지만, 전우들의 피를 틀어막기 위해 몸을 숨기지 않고 계속해서 뛰어다녔다. 배 안의 유일한 의무병이었던 고(故) 박동혁 병장의 이야기다.
당시 박 병장을 치료했던 국군수도병원 군의관의 기억에 따르면, 구조 직후 그의 몸은 처참한 상태였다. 대퇴동맥이 끊겨 다리로 피가 통하지 않았고, 장과 방광이 파열되었으며 척추 근처까지 파편이 파고들었다.

몸에서 확인된 파편의 무게만 약 2.7kg에 달했다. 군의관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명을 달리했을 수준의 중상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박 병장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기적처럼 의식을 되찾았다. 투병 3주 만에 중환자실을 벗어나 일반 병실로 옮겨질 만큼 호전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잠시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자신의 고통이 아닌, 함께 생사를 넘나든 전우들의 안위와 자신이 타던 배에 대한 걱정이었다.
의료진은 그의 영웅적인 스토리에 감동해 “밤을 새워서라도 반드시 살려내야 한다”며 치료에 열정을 쏟았다. 의료진과 가족의 간절한 염원 속에 회복세를 보이던 그는 안타깝게도 끝내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장기간 부상 부위에 항생제를 투여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내성 균주에 의한 뇌세포 세균 감염이 발생한 것이다. 민
간에서 들여온 최신 항생제까지 동원했으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었고, 결국 해전 발발 80여 일 만인 9월 20일 새벽 끝내 눈을 감았다.

그의 전사 소식과 함께 입대 전 어머니에게 남겼던 마지막 한마디가 세상에 알려지며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박 병장은 군 복무 중인 아들을 늘 노심초사 걱정하던 어머니를 향해 “엄마, 의무병은 배 안 타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요”라는 말을 남기고 입대했다.

아들이 위험한 최전방 해상에 투입된다는 사실을 알면 밤잠을 설칠까 염려해 꾸며낸 다정한 거짓말이었다. 그가 남긴 다정한 위로는 결국 가족의 가슴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가장 슬픈 거짓말이 되어 남았다.
당시 치료를 맡았던 군의관은 박 병장을 향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목숨을 던져 전우를 구한 고귀한 군인 정신의 최고봉”이라며 고인의 희생을 기렸다.

조국과 전우를 위해 청춘을 바친 젊은 군인의 숭고한 헌신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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