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사 비하인드’ 선거와 북풍의 극단적 교차점… 1997년 ‘총풍(銃風) 사건’의 재조명

1997년 12월,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수일 앞두고 대한민국 정치사는 사상 유례없는 안보 공작 논란으로 요동쳤다. 이른바 ‘총풍(銃風) 사건’으로 불린 이 사태는 여권 대선 후보의 지지율 반전을 위해 휴전선 인근에서 북한군의 무력시위를 요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가 안보와 선거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대형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베이징 켐핀스키 호텔의 비밀 회동… ‘판문점 총격’ 요청 의혹

사건의 발단은 1997년 11월 말부터 12월 초 사이로 올라간다. 외환위기(IMF) 사태의 파고 속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던 대선 국면에서, 청와대 행정관 출신 오정은, 사업가 한성기, 장석중 등 이른바 ‘총풍 3인방’은 중국 베이징으로 출국했다.
이들은 베이징 켐핀스키 호텔 등지에서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박충 참사 등 북측 관계자들과 접촉했다.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판문점 등 휴전선 인근에서 총격을 포함한 무력시위를 벌여달라고 북한 측에 요청한 혐의를 받았다. 대선 직전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인위적으로 조성을 시도하려 한 사태였다.
이 같은 공작 정황은 정권 교체 이후인 1998년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와 검찰의 수사를 통해 전모가 드러났다. 수사 당국은 북한을 끌어들여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 한 중대 범죄로 규정하고 이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법원의 판결: 국가보안법 유죄 확정과 수사 가혹행위 배상
사건의 법적 판단은 오랜 재판 과정을 거치며 정리되었다. 1심 재판부는 무력시위 요청 공작이 국가안보와 선거제도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 판단해 실형을 선고했으나, 항소심과 대법원은 유죄의 범위를 정밀하게 다듬었다.
2003년 7월 대법원은 오정은, 한성기, 장석중 등 3인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등의 혐의를 인정하여 징역 2~3년에 집행유예 3~5년을 최종 확정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사전 모의나 실제 무력시위 실행까지 이르지는 못했더라도, 대선 국면에서 북한 인사와 접촉해 도를 넘은 발언을 주고받고 동향을 파악하려 한 행위 자체는 국가안보상 법률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북한 접촉 사실을 보고받고도 수사 지시를 내리지 않은 혐의(국가보안법상 특수직무유기)로 기소되었던 권영해 전 안기부장에 대해서는 무죄가 확정되었다. 한편, 총풍 사건은 수사 절차상의 문제점도 함께 남겼다.
안기부 수사 당시 피고인들에 대한 변호인 접견 제한과 가혹행위가 논란이 되었고, 이후 진행된 손해배상 소송에서 2008년 대법원은 국가가 불법 수사로 인한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리며 법치주의적 수사 절차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안보의 정치화가 남긴 유산과 교훈
1997년 총풍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서 ‘북풍(北風)’으로 대표되는 안보 이슈의 정치적 이용이 어디까지 치달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극단적 사례다. 선거 승리를 위해 외교 안보상의 위기를 인위적으로 창출하려 했다는 의혹 자체만으로도 사회적 충격은 상당했다.
전문가들은 총풍 사건을 계기로 남북관계와 안보 사안을 대내 정치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국민적 검증과 법적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 명확해졌다고 평가한다. 유권자들의 안보 의식 고취와 언론의 팩트체크 기능 강화, 사법적 철퇴는 이후 대선 국면에서 유언비어나 안보 공작이 설 자리를 대폭 줄이는 계기가 되었다.
발생 후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총풍 사건은 공정한 선거 민주주의 확립과 안보의 정치적 중립성이 왜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지를 일깨워주는 역사적 반면교사로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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