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 종일 같은 집에 있는데 대화는 몇 마디뿐이다
결혼생활이 오래되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안다고 생각하기 쉽다. 아침을 먹고, 장을 보고, 저녁이 되면 같은 거실에 앉아 TV를 본다. 겉으로 보면 평범하고 안정적인 부부의 하루다. 그런데 정작 하루 동안 나눈 말을 떠올려보면 “밥 먹어”, “택배 왔어”, “내일 병원 가야 해” 정도가 전부인 집도 있다. 함께 사는 시간은 긴데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결혼생활이 오래된 여성들 사이에서는 혼자 있을 때보다 남편과 함께 있을 때 오히려 외롭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사람이 옆에 없어서 생기는 외로움과는 조금 다르다.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이 바로 옆에 있는데 내 마음에는 관심이 없다고 느껴질 때 찾아오는 외로움이다.

같이 있어도 각자 할 일만 하면 어느 순간 ‘부부’보다 ‘동거인’처럼 느껴진다
퇴근한 남편은 휴대전화를 보고 아내는 주방일을 한다. 일이 끝나면 한쪽은 TV를 보고 다른 한쪽은 유튜브를 본다. 처음에는 편하다. 서로 간섭하지 않고 각자 시간을 보내니 싸울 일도 별로 없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몇 년씩 이어지면 문제가 달라진다. 오늘 있었던 일을 궁금해하는 사람도, 기분이 안 좋아 보일 때 “무슨 일 있어?”라고 묻는 사람도 점점 사라진다.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친밀감이 저절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중년 부부 이야기를 들어보면 “싸우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친하지도 않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꽤 씁쓸한 말이다. 큰 갈등이 없으니 관계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서로에게 무관심해져 있었던 것이다.

남편의 은퇴 후 오히려 아내가 더 허전해지는 경우도 있다
남편이 은퇴하면 부부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행도 다니고 밥도 같이 먹으며 그동안 부족했던 시간을 채울 것이라는 기대도 생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지기도 한다. 남편은 은퇴 후에도 동창이나 직장 선후배, 취미 모임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쁘고 아내와 보내는 시간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특히 아내가 오랫동안 가정과 자녀를 중심으로 생활해왔다면 이런 상황에서 허탈함이 더 커질 수 있다.
“이제 시간이 생겼으니 나하고도 뭔가 하겠지”라는 작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친구를 만나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아내에게도 배우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친구를 만나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배우자와의 관계는 언제나 나중 순서가 되는 상황이 반복되는 데 있다.

진솔한 대화가 사라지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속마음을 숨기게 된다
부부 사이에서 대화가 없다는 것은 반드시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오늘 저녁 메뉴부터 공과금, 자녀 문제까지 하루에도 수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요즘 내가 좀 허전하다”, “당신이 이렇게 말했을 때 서운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어?”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이런 대화가 바로 사라지기 쉽다. 괜히 말했다가 싸울 것 같고, 말해봤자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한 번 참고 두 번 참다 보면 어느 순간 배우자에게 말하는 것보다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편해진다. 그때부터 부부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리가 생긴다.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고민은 서로 모른다. 외로움이 깊어지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여성들이 원하는 것이 꼭 거창한 이벤트인 것은 아니다
오래된 부부 관계를 이야기하면 여행이나 외식처럼 특별한 시간을 먼저 떠올리지만 실제 생활에서 필요한 것은 훨씬 작을 수 있다. 밥을 먹으면서 휴대전화를 잠깐 내려놓는 것, 산책을 함께 나가는 것, 하루에 10분이라도 서로 있었던 일을 듣는 것이다. “오늘 뭐 했어?”라는 질문 하나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상대에게는 ‘내 하루가 궁금한 사람이 아직 있구나’라는 느낌을 줄 수 있다.
특히 오랫동안 가족을 돌보는 역할에 익숙했던 사람에게는 자신을 아내나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바라봐주는 시간이 중요하다. 함께 산 세월이 길다는 이유로 관심까지 생략해서는 안 된다. 익숙함과 무관심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오래된 부부에게 필요한 건 함께 있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를 보는 시간’이다
결혼생활이 20년, 30년을 넘어가면 젊었을 때처럼 매일 설레기는 어렵다. 하지만 설렘이 줄었다고 관심까지 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할 일만 하고, 남편은 바깥 사람들과의 만남만 챙기고, 집에서는 생활에 필요한 말만 주고받는 시간이 길어지면 배우자가 있어도 외로울 수 있다.
오히려 혼자 사는 사람의 외로움보다 설명하기 어려워 주변에 털어놓기도 힘들다. 결국 오래된 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하루 종일 붙어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잠깐이라도 서로 얼굴을 보고 “요즘 당신은 어때?”라고 물어주는 시간. 수십 년을 함께 살아도 그런 질문은 여전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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