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선 국회의원이 망치 들고 베를린 잠입한 이유

1970년 8월 15일 광복절 밤 독일 베를린 올림픽스타디움에 대한민국 현역 국회의원이 어둠을 뚫고 잠입했다. 당시 신민당 소속 박영록 의원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의 기념비로 직행했다. 기념비 벽면에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의 국적이 한국이 아닌 일본(JAPAN)으로 새겨진 광경을 보고 그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박영록 의원은 몰래 숨겨온 정과 망치 등 공구를 꺼내 밤새도록 차가운 돌벽을 직접 쪼아냈다. 그는 일본 국적 표기를 완벽히 지워낸 자리에 선명한 글씨로 한국(KOREA)을 새겨 넣는 결단을 감행했다. 이 파격적인 거사로 인해 서독 경찰 당국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고 박영록 의원에 대해 공식 체포령을 내렸다.

독일 경찰의 추적을 피해 무사히 귀국한 박영록 의원은 일제에 빼앗긴 민족의 자존심을 되찾은 인물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그는 서슬 퍼런 외교적 마찰과 형사 처벌 위험을 무릅쓰고 오직 역사적 정통성을 바로잡기 위해 행동했다. 비록 훗날 독일 당국에 의해 표기가 원상 복구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의 행동은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박영록 전 의원은 37세의 젊은 나이에 초대 민선 강원도지사에 당선되며 대한민국 정치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6대와 7대, 9대, 10대 국회의원에 연이어 당선되며 야당을 대표하는 4선 중진 국회의원으로 맹활약했다. 신민당 부총재와 원내총무 등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치며 독재 정권에 맞선 강직한 정치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1969년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 추진 당시 그는 장준하 선생과 함께 최전선에서 강력한 반대 투쟁을 주도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그의 비타협적 태도는 중앙정보부의 집중적인 감시와 혹독한 정치적 탄압을 불러왔다. 1980년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자 그는 계엄사령부에 강제 연행되어 모진 고문과 감금 피해를 겪었다.
신군부 세력은 그에게서 국회의원직을 강제로 박탈하고 전 재산을 국가에 강제 헌납하도록 압박했다. 4선 국회의원과 도지사까지 지낸 거물 정치인이었지만 그는 불의한 정권 앞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권력의 횡포로 하루아침에 모든 자산을 빼앗긴 그는 정치 활동이 규제되는 깊은 암흑기를 견뎌냈다.
정계에서 물러난 박영록 전 의원은 말년에 서울의 3평 남짓한 초라한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했다. 그는 난방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지내면서도 단 한 번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평생을 바친 거물 정치인의 청빈한 일상은 대중에게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
정치권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렸음에도 사리사욕을 멀리했던 그는 국민들로부터 현대판 청백리라는 칭송을 받았다. 자신이 가진 마지막 재산까지 사회에 환원하며 평생을 가난하지만 떳떳한 야당 투사로 살았다. 2019년 97세를 일기로 별세한 박영록 전 의원은 진정한 공직자의 표상으로 역사 속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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