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김일성과 김정일 피 튀긴 권력 암투

1994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내부에서 김일성과 후계자 김정일 사이에 극심한 권력 암투와 노선 갈등이 폭발했다. 김일성은 당시 대한민국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강력히 추진하며 남북 교류와 대외 개방을 통해 경제적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그는 나진과 선봉 등 주요 항만 지역을 대한민국에 전면 개방하겠다는 파격적인 구상까지 주변 간부들에게 공공연하게 털어놓았다.
그러나 군사력 강화와 유일 지배 체제 유지를 고집하던 김정일은 아버지의 급진적인 평화 공세에 극렬하게 반발했다. 김정일은 측근들 앞에서 통일을 운운하는 자들은 모두 노망난 노인들이라며 아버지 김일성을 겨냥한 거친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최고 권력의 정점에서 발생한 두 부자의 정면충돌은 북한 권력층 내부를 거대한 혼란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1989년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군대의 배신으로 몰락하고 처형당하자 김정일은 오직 군사력만이 정권을 지탱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맹신했다. 김정일은 1993년 국방위원장 자리에 오르며 군권을 장악했고 무리한 핵 개발과 군비 증강을 무차별적으로 밀어붙였다. 반면 외교적 성과를 통해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려던 김일성은 1994년 6월 방북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나 정상회담 개최에 전격 합의했다.
김일성은 정상회담 장소인 묘향산 별장에 머물며 남한 대표단을 극진히 맞이하기 위해 침구와 식수 상태까지 꼼꼼하게 점검했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이 탑승할 전용 열차를 위한 철도 개보수 작업을 지시하는 과정에서 철도상으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보고받았다. 주민들에게 식량 배급이 전면 중단되어 철도 공사에 동원할 인력조차 없다는 파탄 난 경제 실상을 뒤늦게 확인한 것이다.
자신이 평생 내세운 이밥에 고깃국이라는 약속이 처참하게 무너진 것을 알게 된 김일성은 김정일에게 불같이 분노했다. 김일성은 김정일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총사령관과 조직비서 직책을 내려놓으라며 서슬 퍼런 질책과 호통을 쏟아부었다. 권력의 위기감을 느낀 김정일은 아버지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물밑에서 필사적인 방어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불안에 휩싸인 김정일을 더욱 자극한 사건은 권력 경쟁에서 밀려났던 배다른 동생 김평일과 삼촌 김영주의 화려한 재등장이었다. 김일성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의 공식 회담 자리에 김정일 대신 외교 능력이 뛰어난 김평일을 배석시키며 큰 힘을 실어주었다. 일각에서는 김일성이 남북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뒤 10년 동안 직접 친정체제를 재가동하려 했다는 첩보까지 흘러나왔다.
남북 정상회담을 불과 18일 앞둔 1994년 7월 8일 새벽 김일성은 묘향산 별장에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돌연 사망했다. 악천후 속에 평양에서 급파된 의료 헬기가 산봉우리에 충돌해 추락하면서 응급 처치 골든타임을 완전히 허비하고 말았다. 정상회담 직전까지 서류에 자필 서명을 남길 정도로 정정했던 최고 권력자의 급사는 수많은 의혹과 음모론을 남겼다.
김일성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한반도 역사상 최초로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 정상회담은 완전히 무산되고 말았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김정일은 권력을 완벽히 승계하며 선군정치를 본격화했고 한반도 정세는 극단적인 냉전의 늪으로 다시 빠져들었다. 평화를 기대했던 남북의 열망은 권력을 둘러싼 부자간의 비정한 대립과 독재자의 죽음으로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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