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자동차가 시간이 지나며 부식되는 이유로는 산성 성분이나 염분, 빗방울의 반복 충격이 지목돼 왔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서 빗방울 자체가 전기를 띠면서 자동차 코팅을 미세하게 뚫고 금속 부식을 촉진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이 확인됐다.
독일 막스플랑크 고분자연구소 연구팀은 움직이는 물방울이 차량 표면과 마찰하면서 자연스럽게 전하를 띠고, 이것이 도막 코팅에 절연파괴를 일으켜 아래 금속에 손상을 유발한다고 지난달 26일 발표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실험 보고서 ‘자연 대전된 물방울의 부식 유발(Spontaneously charged water drops induce corrosion)’은 같은 날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
물방울은 나뭇잎이나 유리, 플라스틱 같은 절연체 표면을 미끄러지는 과정에서 전자를 주고받으며 대전된다. 고체끼리 마찰할 때 정전기가 생기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이런 물방울의 전위는 조건에 따라 수천 V까지 올라갈 수 있다.

차량 도장면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일정 수준의 전하를 띠며, 오래 연속적으로 비를 맞으면 부식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연구팀은 빗방울과 비슷한 35㎕ 크기의 물방울에 소량의 소금을 넣고, 여러 절연 표면을 약 4㎝ 미끄러지게 한 뒤 60㎚ 두께의 테플론으로 코팅된 구리판에 떨어뜨렸다. 이렇게 표면을 미끄러진 물방울은 최대 약 2나노쿨롱(nC)의 전하를 띠었다.
차이는 뚜렷했다. 전하를 띠지 않은 물방울을 3000번 떨어뜨렸을 때는 뚜렷한 손상이 없었지만, 대전된 물방울을 같은 횟수만큼 충돌시키자 테플론 코팅 아래 구리까지 부식이 진행됐다. 연구팀은 테플론뿐 아니라 폴리스티렌과 산화규소 등 다른 절연 코팅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확인했다.
연구를 이끈 한스위르겐 부트 박사는 “원인은 강한 전기장이었다. 대전된 물방울이 금속 가까이 접근하면 물방울 아래쪽이 뾰족한 테일러 콘 형태로 변형됐다”며 “정전기력이 표면장력을 이길 정도로 전기장이 강해졌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대전되지 않은 물방울 3000개를 떨어뜨렸을 때는 코팅 표면에 뚜렷한 손상이 없었지만(a), 여러 표면을 미끄러지며 전하를 얻은 물방울을 같은 횟수 충돌시키자 모두 부식 흔적이 나타났다(c). 원자힘현미경에서는 코팅을 뚫고 구리까지 이어진 미세 결함도 확인됐다(d). 「사진=네이처」
이어 “2nC의 전하를 띤 물방울은 표면에서 약 10㎛ 떨어진 지점에서도 테플론의 절연한계를 넘는 전기장을 만들 수 있었다”며 “코팅이 절연성을 잃는 순간 미세한 전기적 통로가 생기고, 물방울의 전하가 금속으로 방출되면서 코팅 아래까지 손상이 이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2nC로 대전된 물방울이 충돌하자 약 전하 1.8nC이 금속에 전달됐다. 코팅에 생긴 작은 결함에는 이후 물과 염분이 더 오래 머물 수 있어 전기화학적 부식이 가속됐다. 반복 충돌이 5만 회에 이르자 일부 부식 부위는 폭 1㎜ 이상으로 커졌다.
대전된 물방울이 절연 코팅을 손상시키는 과정. 물방울 3000개를 흘려보낸 뒤 석영과 금속의 경계를 따라 부식 흔적이 생겼고(b), 원자힘현미경에서는 도랑처럼 파인 결함(c)이 확인됐다. 물방울이 금속 경계에 접근할 때는 강한 전기장 때문에 앞부분이 뾰족한 테일러 콘 형태로 변형됐다(d). 「사진=네이처」
이번 실험이 실제 자동차 도장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연구팀은 테플론 코팅 구리판 등 단순화한 모델을 통해 새로운 부식 메커니즘을 검증했기에, 비를 맞은 자동차가 곧 같은 방식으로 녹슨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연구팀은 자동차를 비롯해 선박, 교량, 도장된 철 구조물, 옥외 전자기기, 문화재처럼 얇은 절연 코팅 아래 금속이 있는 구조물이라면 이런 현상이 장기적인 열화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기존 부식 방지 코팅은 화학적 저항성을 중심으로 설계되는 경우가 많지만, 앞으로는 물방울이 만드는 강한 전기장까지 견딜 수 있는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김한별 기자 khstar@sputnik.kr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