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전쟁에서 전사한 소년병 고 김하동 일병의 유해가 75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열여덟 나이에 자원입대한 호국영웅이다.
6·25 전쟁에서 산화한 열여덟 살 소년병이 75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는 횡성 전투에서 전사한 고 김하동 일병의 유해 신원을 확인하고 가족에게 인계했다. 경북 경주 출신인 고인은 어린 나이에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자원입대해 전장에 나섰다. 오랜 세월 이름 없이 잠들어 있던 호국영웅이 마침내 신원을 되찾은 것이다.

“열여덟에 자원입대한 소년”
1932년 경주에서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고인은 경주중학교 재학 중이던 1950년 11월, 열여덟의 나이로 자원입대했다. 대구 육군 제1훈련소에서 한 달간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뒤 국군 제8사단에 배치됐다. 학업을 뒤로하고 전장으로 향한 어린 학도병의 결단이었다.(사진 출처=국방부)

“운명을 가른 횡성 전투”
고인은 1951년 2월 횡성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횡성 전투는 국군과 중공군이 치열하게 맞붙어 전황의 향방을 가른 격전으로 꼽힌다. 이 전투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고, 고 김하동 일병도 그중 한 명이었다. 이후 그의 유해는 오랜 세월 수습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사진 출처=국방부)

“이름을 되찾은 호국영웅”
국방부의 유해 발굴과 신원 확인 작업을 통해 고인은 75년 만에 이름을 되찾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은 조국을 위해 헌신한 이들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국가의 약속을 실천하는 일이다. 한 사람의 신원 확인은 유가족에게는 오랜 기다림의 끝이자, 국가적으로는 호국 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된다.(사진 출처=국방부)

열여덟 소년병의 75년 만의 귀환은 자유를 지켜낸 희생의 무게를 다시금 일깨운다. 이름 없이 잠든 또 다른 영웅들을 찾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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