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을 치우고 앉았는데 남편이 서랍에서 통장 하나를 꺼내 왔습니다. 평소 돈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사람이 아니라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받아서 펼쳐 보니 낯선 이름의 계좌였습니다. 몇 줄을 따라 내려가다가 손이 멈췄습니다.

매달 같은 날 같은 금액이 있었다
입금 기록이 몇 년째 한 달도 빠짐없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액수는 크지 않았지만 날짜가 늘 같았습니다. 언제 이런 걸 만들었느냐고 물으니 그냥 넣어 뒀다고만 했습니다. 퇴직하고 형편이 빠듯하다며 걱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매달 같은 날을 지켰다는 사실이 오래 남았습니다.

말 대신 준비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
애정을 말로 옮기는 일이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대신 조용히 뭔가를 준비해 두는 방식으로 마음을 씁니다. 상대가 알아채기 전까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심하다는 오해를 오래 받기도 합니다. 표현의 방식이 다를 뿐 마음의 크기가 다른 것은 아닙니다.

돈 이야기는 신뢰의 문제이기도 하다
부부 사이에서 돈을 꺼내는 일은 늘 조심스럽습니다. 숨긴 것으로 비칠 수도 있고 부담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뜻으로 준비한 것도 말할 시점을 놓치기 쉽습니다. 먼저 꺼내 보이는 것 자체가 상당한 용기입니다. 재산과 관련한 정리가 필요하다면 전문가와 상담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별다른 말을 나누지 못했습니다. 고맙다는 말이 늦게야 나왔습니다.오래 함께 산 사이일수록 서로를 다 안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아직 모르는 마음이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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