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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돈 한푼 쓰지 않고 진짜 나를 찾다” ‘담요를 입은 사람’ 박정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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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감독 (사진=시네마달)

박정미 감독 (사진=시네마달)

리베카 솔닛은 아일랜드 여행기 〈마음의 발걸음〉에서 ‘여행자가 가장 많이 걷게 되는 길은 마음의 길’이라는 걸 길을 떠나 알게 됐다고 한다. 여행이 ‘몸의 위치 뿐 아니라 기억의 위치, 상상의 위치를 바꾸어놓는다’고 말한다. 박정미 감독이 기록한 다큐멘터리 〈담요를 입은 사람〉은 2년 간의 독특한 여행으로 몸과 기억, 상상의 모양을 바꾸고 자신의 마음의 길을 찾기까지 직접 묻고 찍고 만든 다큐멘터리다.

출발의 다짐은 이랬다. ‘오늘 부로 1년 동안 돈 쓰지 않고 영국에서 살아남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이른바, ‘0원 살기 프로젝트’. 무모한 도전을 이끈 동력은 ‘불만’이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직장생활, 군입대를 한 그는 20대에 영국에 갔다. 그곳에서 갑갑한 한국사회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서른을 코앞에 둔 어느 날, 떠나온 이곳 역시 답이 될 수 없다고,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고 여긴 그는 그길로 직장을 때려치고 여행길에 오른다.

〈담요를 입은 사람〉
〈담요를 입은 사람〉

‘스킵 다이빙(버려진 음식이나 물건을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것)’, ‘스퀏팅(빈 건축물을 점거해 주거권을 능동적으로 확보하는 것)’, ‘올드 채플 팜(유기농 자급자족 농장)’ 등 박정미 감독이 2년의 여행 기간 동안 경험한 대안적인 삶의 방식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고 다양하다. 하지만 처음 ‘돈 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질적 탐구와 실험, 호기심은 방향을 돌리고 지도를 넓혀 어떤 나로 살아갈 것인가’라는 내면의 질문으로 확장된다.

영화를 배운 적도 없던 그가 영화를 찍었고, 완성할 지도 몰랐던 영화가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돼 수상(배급지원상)도 했다. 마치 〈잉여들의 히이하이킹〉(2013)처럼 발칙한 무전여행의 재미로 시작한 영화가 길 위의 생활에서 삶의 선택의 문제를 건드리는 〈노매드랜드〉(2021)의 심오한 질문으로 귀결되는 길고도 멋진 여정. 9월 9일 개봉을 앞두고, 박정미 감독이 걸어 온 마음의 도착지를 직접 만나 물어 보았다.

[인터뷰] “돈 한푼 쓰지 않고 진짜 나를 찾다” '담요를 입은 사람' 박정미 감독

영화를 배우거나 경험이 없이 시작했는데요. 처음부터 영화화를 생각하지는 않았다고요.

’0원으로 살기 프로젝트’를 하기로 하고 가능할까 생각했어요. 결심은 했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죠. 그래도 죽지 않는 한 해낸다라는 만큼의 굉장한 큰 결심으로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이 과정을 과연 누가 믿어줄까. 글로 쓰면 제가 제 기억을 조작할 수도 있으니 영상으로 남겨보자 한거죠. 단, 촬영은 기록용으로만 하자. 촬영이 여행보다 앞서거나 우선이 안되도록 노력했어요. 카메라는 늘 차고 있었어요. 무슨 이야기가 나올 지 모르니 밥 먹을때도 일단 플레이 버튼을 눌러놨어요. 그렇게 촬영한 영상이 2테라 정도 나왔어요. 유튜브를 하라는 조언도 많이 받았어요. 유튜브가 조회수가 더 나올 수도 있겠죠. (웃음) 하지만 저는 소수의 관객이 보더라도 그분들에게 전해지는 진동이 다를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고집했던 것 같아요.

〈담요를 입은 사람〉
〈담요를 입은 사람〉

촬영과 인터뷰 기술도 그 사이 향상 됐을 것 같은데요.

사실 기술 없이 찍다보니 제 촬영본이 좀 형편이 없긴 하더라고요. 처음엔 그냥 막 눌렀거든요.(웃음) 자주 찍다보니 촬영 보다는 대화의 기술이 늘었던 것 같아요. 비슷한 주제의 이야기는 과감히 생략하고, 편집을 그때그때 하지는 않았지만 필요없는 것들은 지워나갔죠. 인터뷰 할때 오디오가 겹치는 것도 피하게 됐고요.

〈담요를 입은 사람〉
〈담요를 입은 사람〉

촬영 협조는 순조로왔나요. 어떻게 다가갔나요.

늘 카메라를 켜두고 질문을 하니 농장에서 만난 어떤 분은, ‘컴 온~’ 이러더라고요. 이제 그만 좀 해 (웃음) 사실 대부분은 흔쾌히 촬영에 응해줬는데요. 이게 정말 영화가 될지도 몰랐을 테고 찍어도 얼마나 알려지겠어 싶었을 거예요. 엄청난 장비를 가지고 찍은 것도 아니니 대부분 편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담요를 입은 사람〉
〈담요를 입은 사람〉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분들도 영화 소식을 듣거나 보셨나요.

한국 돌아오고 8년 만에 책 「0원 살기 프로젝트」를 출간했는데요. 그때 친구들에게 트레일러 영상을 만들어서 보냈어요. 그걸 보고 선물을 받은 것 같다고, 눈물이 났다고 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2014년 경에 여행을 했으니 본인들의 생활을 10년 정도 지나서 다시 보게 된거죠. 그들 인생에서도 정말 독특한 여행, 다시 하라면 하지 못할 경험을 한거였어요. 그 접점에서 우리가 만났고, 지금은 모두 각자의 나라로 가서 잘 살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던 것 같아요. 영화에 담기지 않은 부분들도 편집해서 따로 보내주려고 하고 있어요.

〈담요를 입은 사람〉
〈담요를 입은 사람〉

시작은 ‘0원 살기 프로젝트’ 였는데요. 흥미로운 도전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으로 진지하게 나아가는데요.

맞아요. 처음 생각은 단순했어요. 1년 간 돈을 안쓰는데 생존에 필요한 방법을 배워가고 찾아간다. 그리고 한 장소에는 한 달 이상 안 머문다. 그런데 그건 그냥 공동체 그냥 투어가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스스로 고생길을 자처했어요. ‘비슷한 경험은 하지 말자’ 라는 원칙이 더해진 거죠. 새로운 방식은 그때그때 나타났어요. 보트에서 사는 사람들이 빈집 점거하고 사는 사람들을 소개해 주고, 그 사람들이 쓰레기를 줏어 먹는 방법을 알려주는 식이죠. 다음 목적지가 생기면 그걸 하기 위한 여정을 하고 그렇게 2년 동안 여정이 이어졌어요. 돌아보면, 계획하지 못했기 때문에 영화 같은 여정이 되었고 이렇게 영화로 만들어 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담요를 입은 사람〉
〈담요를 입은 사람〉

여행 중 만난 이들에게 배움을 얻고, 그 배움의 과정에서 감독님의 질문 자체가 변했는데요. 어떤 변화를 체감하셨나요.

제 여정을 보면 둘로 나뉘는데 초반이 ‘Way of Living’이었다면 ‘Way of Being’으로 바뀌어요. 처음엔 대안적인 삶의 방식이나 시스템에 관한 질문을 했는데 어느새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행복이 무엇이고 죽음 이후의 삶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얻을까 이런 질문을 하는 거죠. 밖으로 보이지 않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제 후반의 여정이었어요.

〈담요를 입은 사람〉
〈담요를 입은 사람〉

여행을 통해 다양한 공동체의 사람들을 만났는데요. 한국인으로 그들에게서 가장 다르게 체감한 부분은 어떤 것이었나요.

제가 그곳에서 경험한 원시적인 삶 같은 경우 그들에겐 선택이었지만, 아직도 아시아로 오면 그 부족함이 대안이 아니라 삶 자체이기도 하죠. 유럽은 그런 대안적인 삶의 방식이 오래 이어져 왔어요. 산업화 혁명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그 부작용을 우리보다 먼저 경험했기 때문인 거죠. 한국 사회가 부의 축적이나 사회의 성장에 조급해 하고 있었다면 유럽은 거기서 오는 부작용을 고치기 위한 방법을 더 빨리 모색하고 있었던 거죠. 극단적인 방법으로 사는 이들을 보면서 저도 더러는 충격도 느꼈는데요. 그만큼 다양한 방법을 적용하면서 살고 있었어요. 우리사회도 이제 변하고 있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걸리지 않을까요.

〈담요를 입은 사람〉
〈담요를 입은 사람〉

독특한 경험을 한 여행의 끝에 감독님은 다시 한국행을 택하셨는데요. 내가 먹는 것이 내 몸을, 내가 사는 곳이 내 의지를 반영하는 거라면, 지금의 삶의 형태가 궁금해지는 데요.

영화 마지막에 나온 구례 집에서는 나오게 됐고요. 얼마 전까지는 비구니 스님들이 기거하는 거창의 공동체에서 지냈어요. 한국에 온 지 10년이 됐는데, 주거 환경과 어떤 작업을 하느냐에 따라 일상의 루틴이 달라졌어요. 그런데 그럼에도 한가지 변하지 않는 건 돈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는 거였어요. 더이상 통장잔고가 줄어드는 것에 불안을 느끼거나, 돈을 벌어야 겠다 조바심을 내지 않는거죠. 여행 중 만난 사람들에게 배운 생활방식과 방법들을 적용하면서 살았어요. 전기나 난방 없이도 살아 보고, 텃밭을 가꾸기도 하고, 그곳에서 배운 기술을 쓰기도 했어요. 한달 10만원 벌이로 살기도 했고요. 여행 중 만난 활동가들처럼 아주 극단적인 기준을 적용하지는 않더라도 이제는 제 삶에 타협이 가능한 범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정도에서 절충해서 사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아요.

〈담요를 입은 사람〉
〈담요를 입은 사람〉

군인 출신, 해외 취업에 이어 2년 간의 프로젝트 여행까지 감독님이 선택한 삶을 다양하게 살아 왔는데요. 지금까지의 여정을 스스로 종합해 보면 어떤 삶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린 시절부터 20대를 지나 여행을 하던 시기를 돌아보면 뭔가 불만족스러운 게 많았던 것 같아요.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하고 이런 것들이 모두 참을 성이 없어서 터져 나온 거였거든요. 다 나의 불만족에서 나왔구나, 그게 다 내 탐욕이었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 제가 찾은 건, 어디에 있어도 만족할 수 있는 삶, 편안할 수 있는 삶이었던 것 같아요. 결국 어디로 떠나서 답을 찾는게 아니라, 내 안에서 편안하게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이제는 그 방향은 알게 된 것 같아요.

박정미 감독 (사진=시네마달)
박정미 감독 (사진=시네마달)

관객들이 여행 다큐멘터리를 보러 오셨다가, 인생의 철학을 얻게 되실 것 같은데요. 이 작품을 보실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은 늘 행복을 구하는데요. 저는 행복이란 말 대신에 편안함, 평온함 이라는 말이 더 와닿아요. 많은 사람들이 불안한 삶을 이어가죠. 돈만 있으면 불안이 해소될 거라 생각하죠. 집 사면, 차 사면, 보험 들면 괜찮겠지. 돈으로 내 불안과 두려움을 덮어 놓고 살죠. 불안하니까. 그런데 돈이 불안을 완벽하게 해소해 주지는 못해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대안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질문을 각자 던져 봤으면 좋겠어요. 그 두려움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마주하고 깊이 봐야, 불안의 색깔도 옅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 영화가 그런 화두를 던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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