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명한 붉은색 때문에 샐러드용 채소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 비트에는 혈관 건강에서 꽤 특별한 성분이 들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식이성 질산염과 베타레인, 칼륨, 엽산, 식이섬유다. 특히 질산염은 몸속에서 혈관을 이완시키는 산화질소 생성과 연결되기 때문에 혈압과 혈관 기능을 대상으로 한 사람 연구가 상당히 축적돼 있다. 다만 고지혈증까지 같은 수준의 효과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비트가 혈관에서 어떤 변화를 만드는지 하나씩 살펴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비트가 혈관에서 주목받는 핵심, ‘질산염’이 풍부하다
비트의 혈관 건강 효과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살펴야 하는 것은 붉은 색소가 아니라 식이성 질산염(nitrate)이다. 질산염은 비트뿐 아니라 시금치와 루콜라 같은 채소에도 존재하는 천연 성분이다. 음식으로 들어온 질산염 일부는 입안의 세균에 의해 아질산염으로 바뀌고, 이후 체내에서 다시 산화질소(NO)로 전환되는 경로를 거친다. 산화질소는 혈관 벽의 평활근에 신호를 보내 혈관을 이완시키고 혈류를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혈관이 필요할 때 제대로 확장되지 못하는 내피 기능 이상은 고혈압과 동맥경화를 비롯한 심혈관질환의 초기 변화와도 관련된다.
그래서 비트 연구에서는 단순히 항산화 성분이 많다는 이야기보다 ‘질산염→아질산염→산화질소’ 경로가 훨씬 중요하게 다뤄진다. 무작위 임상시험을 종합한 메타분석에서도 비트와 무기질산염 섭취 후 혈관 내피 기능을 평가하는 혈류매개확장(FMD)이 개선됐다. 또 다른 27개 임상시험 분석에서는 비트의 질산염 섭취가 혈류매개확장을 높이고 동맥경직도를 나타내는 맥파전달속도를 낮추는 결과가 나타났다. 비트가 혈관을 직접 청소하는 것은 아니지만 혈관이 정상적으로 이완하고 혈류를 조절하는 과정에는 꽤 흥미로운 식품인 셈이다.

고혈압 환자 연구에서는 수축기 혈압이 약 5mmHg 낮아졌다
비트의 장점을 뒷받침하는 사람 대상 연구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혈압이다. 2024년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무작위 임상시험 11편, 총 349명의 결과를 종합한 메타분석에서는 질산염이 풍부한 비트주스를 섭취한 사람의 진료실 수축기 혈압이 대조군보다 평균 5.31mmHg 낮아졌다. 반면 이완기 혈압과 24시간 활동혈압에서는 통계적으로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에서 사용된 비트주스는 하루 200~800mg의 질산염을 제공했으며 연구진 역시 전체 근거의 확실성을 낮은 수준으로 평가했다.
2025년 식이성 질산염 연구 75개, 총 1,823명을 종합한 분석에서도 질산염 섭취량이 증가할수록 급성·단기·중기적으로 수축기 혈압이 감소하는 용량-반응 관계가 확인됐다. 이런 결과는 비트가 단순히 ‘혈액순환에 좋다고 알려진 채소’ 수준을 넘어 실제 혈압과 혈관 기능을 측정하는 임상연구가 상당히 진행된 식품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혈압이 높아지고 혈관의 탄성이 떨어지기 쉬운 만큼 평소 채소 섭취를 늘리는 과정에서 활용할 만하다. 다만 비트가 혈압약을 대신할 정도의 효과를 가진다는 의미는 아니며, 기존 치료를 유지하면서 건강한 식사의 한 부분으로 활용하는 것이 맞다.

붉은색을 만드는 ‘베타레인’, 산화 스트레스에서도 주목받는다
비트를 자르면 손과 도마까지 붉게 물드는데 이 강렬한 색을 만드는 대표적인 색소가 베타레인(betalain)이다. 그중 붉은 계열의 베타시아닌에 속하는 베타닌(betanin)은 비트의 대표적인 생리활성 성분이다. 베타레인은 안토시아닌과는 다른 계열의 천연 색소이며 항산화 및 염증 관련 작용 때문에 꾸준히 연구돼 왔다. 혈관에서는 산화 스트레스가 지나치게 증가하면 혈관 내피 기능에 영향을 주고 LDL 입자의 산화와 염증성 신호에도 관여할 수 있다. 베타닌에 관한 연구에서는 활성산소와 관련된 산화 반응을 완화하고, 우리 몸의 항산화 방어를 조절하는 Nrf2 경로와 염증 반응에 관여하는 NF-κB 경로 등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제시됐다.
비트의 잠재적인 건강 효과를 종합한 연구에서도 질산염뿐 아니라 베타레인이 비트의 주요 생리활성 성분으로 꼽힌다. 다만 베타레인의 심혈관 보호 효과는 질산염과 혈압의 관계처럼 사람 대상 대규모 임상시험으로 확실하게 증명된 단계는 아니다. 세포와 동물 연구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타레인이 혈관의 찌꺼기를 제거한다’고 표현하기보다 혈관 손상 과정과 관련된 산화 스트레스와 염증 반응 측면에서 연구되는 비트 특유의 식물성 성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혈관 환경을 개선하는 비트, 고지혈증 관리에도 활용할 만하다
고지혈증은 단순히 혈액 속 콜레스테롤 수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LDL 콜레스테롤이 높은 상태에 고혈압, 혈관 내피 기능 저하, 산화 스트레스 등이 겹치면 장기적인 심혈관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비트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 과정 가운데 혈압과 혈관 기능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비트에 풍부한 식이성 질산염은 체내에서 산화질소 생성에 이용되고, 산화질소는 혈관의 정상적인 이완과 혈류 조절에 관여한다. 실제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한 무작위 임상시험 메타분석에서도 질산염이 풍부한 비트주스 섭취 후 수축기 혈압이 감소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따라서 고지혈증이 있는 사람에게 비트는 LDL 수치 하나만을 겨냥하는 식품이라기보다 혈압과 혈관 기능을 함께 관리해 전체적인 심혈관 건강에 유리한 식단을 만드는 채소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여기에 비트를 통째로 먹으면 식이섬유와 칼륨, 엽산, 베타레인 같은 영양성분까지 함께 섭취할 수 있어 기름지고 짠 음식이 많은 식단을 채소 중심으로 바꾸는 데도 활용하기 좋다.

엽산·칼륨·식이섬유까지, 비트가 가진 영양은 질산염만이 아니다
비트가 혈관에 좋은 채소로 평가받는 이유를 질산염 하나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아깝다. 비트에는 엽산과 칼륨, 식이섬유를 비롯한 여러 영양소가 들어 있다. 엽산은 세포 분열과 DNA 합성에 필요한 비타민B군의 하나이며 호모시스테인 대사에도 관여한다. 호모시스테인은 메티오닌 대사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아미노산으로 혈중 농도가 지나치게 높은 상태가 심혈관질환 위험과 연관돼 연구돼 왔다. 칼륨은 정상적인 혈압 유지에 중요한 무기질이다. 특히 짠 음식을 많이 먹는 식생활에서는 충분한 칼륨을 채소와 과일에서 섭취하는 것이 나트륨과 혈압 관리에 유리하다.
식이섬유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비트주스를 만들면서 찌꺼기를 걸러내면 식이섬유 상당 부분을 놓칠 수 있지만 생비트나 익힌 비트를 통째로 먹으면 섬유질을 함께 섭취할 수 있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단은 포만감과 혈당 관리에 유리하고, 특히 수용성 식이섬유가 충분한 식생활은 LDL 콜레스테롤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결국 비트의 장점은 특정 성분 하나가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데 있지 않다. 질산염이 혈관 이완과 연결되고, 칼륨과 식이섬유, 엽산 및 베타레인 같은 성분이 함께 들어 있다는 영양 조합 자체가 강점이다.

주스로만 마실 필요 없다, 고지혈증이라면 ‘통째로 먹는 비트’도 좋다
비트 관련 임상시험에서 비트주스가 많이 사용되다 보니 건강을 위해서는 반드시 즙으로 마셔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일상적인 식사라면 그럴 필요가 없다. 혈압 연구에서는 일정량의 질산염을 정확하게 제공하기 위해 농축 비트주스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일반인은 삶거나 찐 비트를 샐러드와 반찬으로 먹어도 된다. 특히 고지혈증이나 체중까지 함께 관리한다면 비트를 통째로 먹는 방식에는 식이섬유를 그대로 섭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얇게 썬 비트를 가볍게 익혀 샐러드에 넣거나 양배추·당근과 함께 먹고, 단백질은 생선이나 두부, 콩류를 곁들이면 한 끼 구성이 좋아진다. 반대로 시판 비트즙을 선택할 때 사과나 배 농축액, 설탕 등이 많이 첨가된 제품은 혈관 건강을 목적으로 매일 마시기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또 비트에 들어 있는 질산염이 산화질소로 바뀌는 과정에는 입안의 세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강력한 항균 구강청결제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이 경로가 일부 방해될 가능성도 연구돼 있다. 결국 비트를 활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특별한 ‘혈관 청소 주스’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채소가 충분한 식사의 한 재료로 꾸준히 먹으면서 짠 음식과 가공육, 포화지방이 많은 식사를 함께 줄이는 것이다.
한눈에 보는 핵심 정리
식이성 질산염 체내에서 아질산염을 거쳐 산화질소 생성에 이용되며 혈관 이완과 혈류 조절에 관여한다.
혈압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한 메타분석에서는 질산염이 풍부한 비트주스 섭취 후 수축기 혈압이 평균 약 5.3mmHg 낮아졌다.
베타레인 비트의 붉은색을 만드는 대표적인 식물성 색소로 산화 스트레스와 염증 반응과 관련해 연구되고 있다.
고지혈증 비트가 LDL이나 중성지방을 직접 낮춘다는 임상 근거는 아직 뚜렷하지 않지만 혈압과 혈관 기능을 포함한 전반적인 심혈관 건강 측면에서 활용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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