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주소 있는데 북한군 주둔?…’한박도’ 둘러싼 70년 영토·행정 미스터리

대한민국 행정 주소가 버젓이 부여돼 있고 국유지 등기까지 되어 있는 서해의 한 작은 섬에 북한군 병력과 감시 시설이 주둔하고 있는 기이한 현실이 재조명받고 있다. 바로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말도리 산 97번지라는 지번을 가진 무인도 ‘함박도(한박도)’의 이야기다.
축구장 3개도 채 되지 않는 약 0.02㎢(약 6,041평) 규모의 작은 섬 함박도는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정전협정 경계선, 그리고 대한민국 행정망 사이의 오랜 엇박자가 빚어낸 한반도 분단사의 대표적 모순으로 꼽힌다.
대법원 등기엔 ‘산림청 소유 국유지’…인터넷 지도도 NLL 이남 표기 혼선

실제로 대법원 인터넷등기소에서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말도리 산 97’을 검색하면 현재도 유효한 등기부등본이 조회된다. 소유권자는 대한민국 정부(관리청: 산림청)로 등록되어 있으며 국유지로 분류돼 있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 지도 등에서도 함박도는 NLL 이남 수역에 위치한 것으로 표시되거나 구글 어스 등 글로벌 지도 서비스에서도 한국 관할 지번과 연동되어 표기되는 등 혼선이 이어져 왔다.
이 때문에 지난 2019년, 함박도 내에 북한군 막사와 감시 초소(레이더 등 소대급 주둔 시설)가 설치된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대한민국 영토를 북한에 군사적으로 점령당한 것 아니냐”는 대대적인 영토 및 안보 공방이 국회와 사회 전반을 뒤흔들었다.
1953년 정전협정의 실체…”NLL 북쪽 700m, 원래 북측 관할”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당시 정부는 국방부와 해양수산부 등 관계부처 합동 검증팀을 꾸려 정전협정 원본 및 관련 좌표를 전수 조사했다.
조사 결과, 함박도는 1953년 정전협정 당시 설정된 ‘도(道) 경계선(경기도와 황해도 간 경계선)’에서 북쪽으로 약 1km, 그리고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설정한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도 북쪽으로 약 700m 떨어진 북측 관할 도서라는 사실이 최종 확인됐다.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역시 함박도가 정전협정상 북측 관할 구역에 명백히 속한다는 점을 공식 확인했다.
정전협정 제2조 13항 (b)목에 따르면, 서해 5도(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를 제외한 황해도와 경기도 도계선 북쪽 및 서쪽의 모든 도서는 북한군(조선인민군 및 중국인민지원군)의 군사 통제하에 두도록 명시되어 있다. 지리적 좌표상 함박도는 이 북측 관할 범위에 포함되는 섬이었다. 즉, 우리 정부의 지도나 행정망에 등록된 것 자체가 과거 행정 착오에서 비롯된 오류였던 셈이다.
1965년 어민 집단 납북부터 1978년 지적 등록까지…70년 엇박자의 내막
함박도가 북측 관할 섬임에도 대한민국 행정 체계와 깊숙이 얽히게 된 배경에는 서해 접경 지역 어민들의 생활사와 부실했던 국가 행정망이 자리 잡고 있다.
1965년 ‘함박도 어민 납북 사건’: 썰물 때면 인근 말도·우도와 갯벌로 연결되는 지형 탓에 과거 강화도 주민들은 조개 채취를 위해 함박도 갯벌까지 진출하곤 했다. 1965년 10월, 함박도 근해에서 조개를 캐던 남측 어민 232명이 북한군에 기습 나포되어 112명이 납북됐다가 104명이 23일 만에 귀환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당시 우리 주민들의 실질적인 경제 활동 반경에 함박도가 걸쳐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978년 지적복구 등록의 오류: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8년 12월, 강화군청은 도서 지역 지적복구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정전협정상 군사통제선 좌표를 엄밀히 검증하지 않은 채 관행에 따라 함박도를 ‘말도리 산 97’로 지적공부에 신규 등록했다.
관성적으로 이어진 행정 처분: 이후 산림청은 2008년 함박도를 ‘보전산지’로 지정했고, 문화재청은 2009년 ‘천연기념물 번식지(국가지정문화재)’ 구역에 편입시켰으며, 해수부는 2012년 ‘절대보전 무인도서’로 고시했다. 심지어 정부는 매년 함박도에 대한 개별공시지가까지 산정해 발표해 왔다.
감사원 최종 결론 “실효지배 빼앗긴 것 아냐…행정 오류”

국회의 요구로 2020년 감사를 진행한 감사원 역시 정부 과거 지도 11종과 군사지도 등을 정밀 대조했다. 지도마다 경기도 혹은 황해도 표기가 엇갈리는 등 행정적 혼선이 장기간 방치된 사실은 드러났으나, 감사원은 “함박도가 정전협정상 도계선 및 NLL 이북에 위치한 북측 관할 도서라는 국방부의 판단을 뒤집을 만한 근거는 없다”고 못 박았다.
결과적으로 함박도는 대한민국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영토를 북한에 군사적으로 강탈당한 것이 아니라, 정전협정에 따라 북측 관할로 정리되었던 섬이 부실한 행정 등록과 관리로 인해 마치 우리 땅인 것처럼 둔갑했던 행정 참사로 매듭지어졌다.
현재 함박도는 북한 관할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어 민간인이 지도만 믿고 무단 접근하거나 입도할 경우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을 받게 된다.
인천국제공항과 직선거리로 약 40km에 불과한 전략적 요충지인 만큼 우리 군은 인근 우도 기지 등에서 함박도 내 북한군 동향을 24시간 정밀 감시하고 있다. 영토 조항(헌법 제3조)과 군사분계선, 그리고 국가 행정망의 괴리가 만들어낸 함박도의 촌극은 70년 분단 체제가 남긴 씁쓸한 자화상을 여실히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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