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감독도 어려운 ‘쌍천만’ 달성!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 천만 기념 살짝 꼬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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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이 또 놀라게 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가 9월 6일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번 작품의 천만 돌파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인터스텔라〉에 이어 다시 한 번 천만 관객 돌파에 성공해 ‘쌍천만’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개봉 32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오디세이〉는 이후에도 기세가 꺾이지 않고 흥행 순풍을 타고 있다. 씨네플레이 기자들 역시 〈오디세이〉를 무척 만족스럽게 본 입장에서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론 단순한 축하가 아니라 이 영화를 다시금 생각해볼 시간이지 않나 싶었다. 그렇게 〈오디세이〉의 천만을 맞아 각자가 마음에 품어두었던 지점을 아래와 같이 옮겨본다.
성찬얼_특별관과 놀란이란 이름의 힘

마침내, 놀란이 기록을 세웠다. 그의 신작 〈오디세이〉가 천만 관객을 돌파한 건 그 작품의 기록임과 동시에 크리스토퍼 놀란이란 이름이 세운 기록이기도 하다. 그는 천만 관객을 동원한 외국인 감독 중 시리즈나 프랜차이즈의 힘을 밀리지 않고 유일하게 오리지널 영화로만 천만 관객 돌파를 두 번 성공했다. 이것은 곧 그의 작품은 늘 한국 관객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증거이자 그 사랑에 빼어난 작품으로 화답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 〈오디세이〉의 기록은 다른 작품들의 기록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가 있다. 바로 (예상했겠지만) 아이맥스의 압도적인 비중이다. 〈오디세이〉가 전체 분량을 아이맥스 카메라에 아이맥스 필름으로 촬영했으니 당연히 아이맥스에서의 흥행이 클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비중은 다른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상상을 초월한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KOBIS) 집계에 따르면 9월 6일 기준, 〈오디세이〉 전체 관객 1,002만 명 중 113만 명이 아이맥스로 관람했다. 약 11.3%의 비중이다. 에게 고작, 이라고 생각한다면 천만 관객을 돌파한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과 비교해보자. 1,397만 명이 관람해 역대 한국 개봉 영화 중 6위에 이름을 올린 〈어벤져스: 엔드게임〉. 아이맥스 관람자 수 2D, 3D 포함 ‘고작’ 58만 명에 불과하다. 전체 관객 중 4.2%에 불과하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 아이맥스를 포함해 특별관 상영은 관람료가 높다는 사실이다. 즉〈 오디세이〉는 단순한 천만 관객 돌파를 넘어 수익에서도 상당 부분 우위를 점한다. 일반 디지털 관객 826만 명은 83억 1,277만 원의 매출액을 세웠다. 대강 계산하면 1인당 약 1만 50원 정도의 매출을 남겼다. 반면 아이맥스는 총 113만 명으로 20억 4,330만 원 누적매출액을 달성했다. 1인당 17,999원에 해당한다. 비율도 확실히 크다. 관객수는 11.3%인데 반해 누적매출액 비율은 18.3%. 한국에서 관객수를 중점적으로 보긴 하지만, 이 정도면 1천만 관객 돌파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쏠쏠한 성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관객이자 한 명의 기자로서 ‘왜’인지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오디세이〉는 그렇게 관객 친화적인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시간을 뒤죽박죽 섞고, 그 과정에서 이야기의 해결은 거듭 지연되며, 그렇다고 눈을 홀리는 스펙타클이 가득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오디세이〉는 같이 천만 경쟁을 하던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가 한풀 꺾였을 때에도 기세가 유지됐다. 둘 다 본 관객도 많겠지만, 결과적으로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가 아닌 〈오디세이〉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건 전자보다 후자를 훨씬 좋게 본 필자 입장에서도 참 의아하다. 왜? 그 멋지고 통쾌한 슈퍼히어로가 아닌 고뇌하고 헤매는 한 인간에게 관객들은 더 끌린 걸까.
그 힘이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이름값이라고 생각한다. 놀란 감독의 첫 천만 영화 〈인터스텔라〉도 그랬다. SF 볼모지라고 불리는 한국에서 그는 〈인터스텔라〉라는 사실적인 SF로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번 〈오디세이〉도 (그리스 신화 요소가 있지만) 고대 서사시를 원작으로 한다. 즉 둘 다 한국에서 흥행하기 쉽지 않은 요소다. 그럼에도 그는 두 편이 한국 내에서 가장 크게 흥행했다. 개인적으로 많은 관객들이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기대하는 것이 이 두 편의 성공에서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더 화려하거나 스펙타클한 영화를 만들 감독은 놀란 말고도 많다고 가정할 때, 결국 놀란의 오리지널리티가 흥행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스텔라〉와 〈오디세이〉가 공유하는 지점은 다음과 같다. 지적인 것, 그리고 그것을 현실적으로 화면으로 옮긴 것. 그래서 한국 관객 대다수가 그에게 기대하는 오리지널리티는 이 두 가지가 아닐까 추측한다. (〈테넷〉이나 〈인셉셥〉 같이) ‘특이’하거나 ‘독창적’인 영화보다 (〈인터스텔라〉나 〈오디세이〉 처럼) 오히려 모두가 알 만한 것을 제대로 구현했을 영화 말이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면 이른바 지적인 무언가를 보았다는 환상을 충족하는 영화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작을 좋아하는 팬이지만, 유독 그렇게 지적인 것을 충족하는 영화의 쌍천만은 조금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주성철_영화 현장의 남성성의 마지막 흔적, 아이맥스 카메라
‘카메라는 무거워서 여성은 촬영감독으로 일하기 어렵다’라는 얘기는 영화계에서 굉장히 오래전부터 통용되어왔다. 예술이자 기술인 영화의 세계에서, 무겁고 복잡한 장비를 다루는 영화 현장의 기술 스태프는 오랜 시간 남성들의 전유물로 인식되어왔다. 프로불편러라 얘기할지도 모르겠지만, 평소 크리스토퍼 놀란의 아이맥스 촬영에 대한 집착이 가장 불편했던 이유 중 하나는, 아이맥스 카메라 자체가 이른바 ‘성인 남자’가 들기에도 무거운 장비이기 때문이었다. 갈수록 간소화, 경량화되고 있는 장비와 전통적 영화 미학의 구현 사이의 딜레마 사이에서, 후자의 이유로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긴 하지만, 왠지 그런 집착이 갈수록 버추얼 프로덕션으로 나아가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 마지막 남성성의 보루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테넷〉 〈오펜하이머〉 〈오디세이〉 등을 촬영한 놀란의 단짝 호이트 반 호이테마 촬영감독은 거대한 아이맥스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핸드헬드 촬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놀란과 호이테마 역시 작고 조용한 아이맥스 카메라를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 왔지만, 어쨌건 20~30킬로그램 사이를 오가고 있다. 어쨌거나 여전히 쌀 한 가마니보다 무겁다. 게다가 무게보다 소음이 더 문제라, 거대한 방음 케이스까지 씌우면 무려 180킬로그램에 육박한다. 〈오디세이〉 촬영 현장에서 카메라를 옮기는 인원만 7명이 필요했다.
지난해 세이지(SAGE) 저널에 실린 논문 ‘가상적 포용성: 버추얼 프로덕션 작업환경에서 여성과 젠더 다양성을 지닌 사람들의 가능성과 경험’에 따르면, “영화 제작은 전통적으로 육체적인 활동이었고, 특히 촬영 분야는 이러한 고정관념이 강한 영역”이며 “그 고정관념이 비교적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촬영감독으로 성공하려면 크고 무거운 장비를 운반할 힘이 있어야 한다’는 오랜 인식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논문에서 인터뷰한 한 여성 촬영감독은 “실제 촬영 업무는 여성들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었고 지금도 수행하고 있다. 문제는 여성의 신체적 능력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여성들이 ‘내가 그걸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남성보다 더 많이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어 늘 두 배로 노력해야 했다”고 말한다. 호이트 반 호이테마 촬영감독의 육중한 피지컬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그 여성 촬영감독은 “아이맥스 카메라는 강한 남자만 다룰 수 있을 거란 이미지가 꽤 큰 진입장벽이 될 가능성”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물론 이런 고정관념을 깬 촬영감독이 있다. 바로 〈씨너스: 죄인들〉(2025)로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흑인으로서도 최초의 아카데미 촬영상 수상자로 기록된 오텀 듀랄드 아카포 촬영감독이다. 실제로 〈씨너스: 죄인들〉 울트라 파나비전 70 촬영과 아이맥스 촬영을 혼용했는데, 그를 위해 호이트 반 호이테마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30킬로그램 가까운 아이맥스 카메라를 직접 어깨에 올려 일부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호이트 반 호이테마는 “카메라의 크기와 무게를 걱정하지 말고 다른 카메라처럼 영화를 찍으라”고 조언했고, 오텀 듀랄드 아카포는 “무겁지만 충분히 다룰 만하다”고도 했다.
아이맥스 카메라 같은 무거운 장비를 다루는 능력을 촬영감독의 능력과 동일시해온 오랜 문화가 여성 영화인의 영화계 진입을 제한해왔다는 시선과,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AI 영화 및 버추얼 프로덕션이 시각언어의 진화 및 영화계의 성평등 문제에 있어 전에 없던 혁명을 이룰 것이란 기대 사이에서, 마치 영화관처럼 구시대의 유물로 여겨지는 ‘아이맥스 카메라 사용설명서’라는 화두는 끊임없이 고민해볼 문제다.
김지연_왜 칼립소와의 장면이 유독 튀는가?
우스갯소리로, 3시간에 육박하는 긴 〈오디세이〉의 러닝타임 동안, 만약 불가피하게 화장실에 가야 한다면 많은 이들이 ‘칼립소’(샤를리즈 테론)가 등장하는 장면을 꼽곤 한다. 아마도, 칼립소와 오디세우스(맷 데이먼)의 대화 장면을 놓치더라도 영화를 이해하고 영화에 감응하는 데에 별 무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일각에서는 칼립소의 섬 장면이 영화의 다른 장면과는 달리 정적이며, 매끄럽고 현대적으로 연출되어 유독 튄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그 ‘이질감’ 역시 놀란이 의도한 점일 수도 있긴 하나, 왜 칼립소와의 장면이 관객들에게 이질적으로 다가오는가. 영화 속 칼립소와의 장면은 오직 놀란의 트레이드마크격인 ‘비선형적 구조’를 위해서만 기능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의 섬 ‘오기기아’에서 지내며, 잃어버린 기억을 하나둘씩 되짚어 보며 영화가 전개된다.
마치 ‘회상의 창구’처럼 기능하는 이 장면은 놀란의 비선형적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소비되었다. 그러니 칼립소 캐릭터가 붕 떠 보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원전에서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와 사랑을 나누고, 그에게 불멸의 삶을 주겠다며 그를 섬에 억류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영화는 오디세우스를 오직 페넬로페(앤 해서웨이)만을 바라보는 ‘순정남’으로 재설정하면서, 칼립소를 남몰래 오디세우스를 향한 외사랑을 품은 인물이자 오디세우스의 고백을 들어주는, 수동적인 ‘심리 상담가’와 같은 납작한 인물로 축소했다. 그 때문에, 7년 동안 오디세우스를 붙잡아두던 인물이 한순간에 동정심을 느껴 로터스 제공을 멈추고 그를 보내준다는 설정 역시, 인물의 심리 변화를 설명하기엔 개연성이 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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