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최민식 배우 인터뷰는 1부로부터 이어집니다.

후반부, 흔들리는 선우에게 기호가 “정신 차려!”라고 호통을 치는 대목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였는데요. 해당 장면은 어떤 마음으로 연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어른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 있잖아요. “내 딸자식 같아서 하는 이야기인데”, “내 아들내미 같아서 하는 소리인데”하고 건네는 한국 아저씨 고유의 정서죠. 원래 대본은 “제가 만약 대표님의 아버지였다면 이렇게 얘기했을 것 같네요”라는 대사를 먼저 건네고 정신 차리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촬영 전날 숙소에서 대본을 가만히 보는데, 이 중요한 신을 그렇게 밋밋하게 가져가면 관객에게 설득력이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현장에서 김도영 감독한테만, 한소희 배우 몰래 살짝 제안했습니다. 대사의 순서를 바꿔서, “정신 차려!”를 먼저 하고, 그다음 “대표님이 제 딸이었으면 이렇게 얘기했을 것 같네요”라는 말을 하는 것은 어떻냐고요. 그래서 현장에서 (한)소희가 진짜로 놀랐어요. 그런데 소희가 그 순간 인물에 완전히 이입해서 펑펑 눈물을 쏟아내더라고요. 제가 던진 뉘앙스를 제대로 받아내어 감정을 몰아준 소희에게 무척 고마웠습니다. 덕분에 그 장면이 아주 생생하게 완성됐어요.
3개월 인턴 기간이 끝난 뒤, 우투투에 계속 머무르는 것을 택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기호가 우투투의 정직원으로 남지 않고 떠나는 결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기호에게 우투투는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니까요. 노년의 인생에서 젊은 사람들과 잠시 잘 어우러져 좋은 추억을 쌓은 것으로 충분히 만족하는 겁니다. 여기서 제2의 인생을 거창하게 도모하려고 하면 〈인턴2〉가 나와야겠죠. 스쳐 지나가는 간이역처럼 가볍고 소중하게 내려놓는 여유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기호처럼 실제 현장에서도 젊은 배우들과 자주 소통하셔야 할 텐데,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다가가는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이제는 현장에 가보면 열 작품 중 아홉 작품은 다 까마득한 후배들입니다. 후배들과 함께하는 작업에서는 제가 먼저 다가가서 잘 놀아야 해요. 냉정하게 얘기해서, 솔직히 놀러 온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저도 싫은 소리 할 땐 하죠. 화합이라기보다도 팀워크가 필요한 작업이에요. 싸울 때 싸우더라도 격렬한 토론을 하고 서로 이견을 확인하고, 싸우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이 작품이 목표하는 바, 감독이 추구하고자 하는 세상을 그리기 위해서 우리는 모인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걸 명확하게 인식하는 게 중요하죠. 그럼 이번에 〈인턴〉을 할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제가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물이 되려고 노력했어요. 그냥 젖어들자, 얘네들한테 스며들자. 같이 놀고, 요즘 말도 배우고 MZ세대 유행어도 배우고. 그게 또 기호라는 캐릭터와 일맥상통하지 않나, 어떻게 보면 사전 작업이에요. 작품에서 보이는 기호라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저 나름의 작업이죠. 근데 이런 말랑말랑한 작품 말고 굉장히 각 잡히고 강렬한 장르물을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호흡이잖아요. “정말 때려죽이고 싶고 꼴도 보기 싫은데” 이런 감정이 그냥 나올 수가 없잖아요. 가장 기본적으로 같이 밥도 먹고, “밥 먹었냐”, “오늘 술 한잔할까” 이러면서 서로 알아가는 작업이 필요한 거죠. 이게 또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저도 나름대로 이 세월 동안 이런 거에 좀 단련이 된 것 같아요. 아무래도 나이 차이도 있고 하니까 제가 가만히 있으면 얘네들이 어려워하잖아요. 그러니까 괜히 제가 가서 옆구리 푹 찔러서 장난도 치고 그런 것도 하죠.
현장에서 많이 농담을 건네신다고요. 농담을 건넸을 때 후배들 반응은 어떠한가요?
대체적으로 다 썰렁해합니다. “뭐야” 하면서요.(웃음)
〈인턴〉을 보면서 최민식 배우의 주름이 굉장히 뭉클하게 보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깊어지는 주름과 세월을 배우로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시나요?
저는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나이 먹는 게 너무 좋아요. 외국 배우들의 경우를 봐도 더 감동적이지 않아요? 연기가 더 깊고요. 배우가 젊었을 때 “나 이렇게 젊고 멋있어”, “나 이렇게 젊고 예뻐”하며 뽐내는 시절이 있죠. 당연히 그걸 뽐내야죠. 한참 젊고 예쁘고 멋있었을 때 안 뽐내면 언제 뽐내겠어요. 근데 그것도 좋지만, 결국 우리가 드라마로 표현하는 게 뭐겠어요. 우리는 삶을 표현하는 거잖아요. 사랑이 됐든 분노, 증오, 뭐가 됐든 간에 어느 정도 알아야 되잖아요, 그 느낌을. 배우가 나이 먹는 건 흠이 아니에요. 오히려 진짜 숙성된 맛을 낼 수 있는 좋은 시기가 왔다는 거죠.
마치 기호처럼, 최민식 배우 역시 언젠가 은퇴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 은퇴 절대 안 할 겁니다!(웃음) 신구 선생님을 보세요. 그 연세에도 무대 위에서 여전히 정정하게 연기하시고 약주도 반주도 하시는데 얼마나 멋집니까. 배우는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좋은 작품을 하며 살 수 있는 직업이에요. 저는 제가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좋은 작품 하면서 살고 싶어요. 〈인턴〉의 기호와 캐릭터를 통해서 제 스스로를 돌아보고 이런 건 없어요. 저는 돌아볼 나이도 아니고, 아직 쌩쌩하고 까딱없어요. 이제부터라고 저는 생각해요. 진짜로 이제부터 제 진정한 필모를 쓰고 싶어요. 이제부터 뭔가를 제대로 더 할 수 있을 것 같고, 더 전투력이 상승하고 더 다양하게 표현해 보고 싶은 욕구가 더 많아요.
현실의 최민식에게도 ‘김기호’ 같은 어른이 계셨나요?
저의 은사님이셨던 고(故) 안민수 교수님(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명예교수)이 계십니다. 무척 그립고 엄하신 분이었어요. 〈파이란〉이나 〈올드보이〉 시사회 때 모셔도 “영화 잘 봤다”는 칭찬 대신 “너 관객들 앞에 인사하러 서면서 옷차림이 그게 뭐냐” 하고 말씀하시던 분이었죠. 그 정도로 칭찬에 인색하시고 웬만해선 “잘했다” 소리를 안 하셨어요. 대학 시절, 한번은 연극 무대를 세팅하다가 오밤중에 무대에서 신문지를 깔아놓고 떡볶이하고 국물 갖다 놓고 한잔 한 적 있어요. 그런데 걸려서 되게 혼났어요. 연극 시작한 놈들이 무대라는 공간에서 술을 먹는다고요. 안민수 교수님이 무대는 하나의 성전이라면서, 분장실 거울 앞에서 화장을 바르는 순간 너라는 인간은 사라지고 오직 캐릭터로 들어가는 숭고한 시간인데, 연극하는 놈들이 무대를 성전처럼 대하지 않고 술이나 마시고 다니냐며 혼을 내셨어요. 그만큼 배우라는 직업을 얼마나 소중하고 자긍심 있게 여겨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신 분이에요. 다른 예술가들은 제 손가락이나 성대에 보험을 들며 몸을 아끼는데, 배우들은 왜 제 몸이 악기이면서 술로 혹사하냐면서요. 나중에 임권택 감독님을 통해 안 교수님이 사석에서 “민식이가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다”라고 말씀하고 다니셨다는 얘길 전해 듣고 울었어요.
예고편 공개 이후 젊은 관객들 사이에서 최민식 배우의 과거 대사를 인용해 밈으로 즐기는 반응들이 뜨거운데요, 알고 계신가요?
알고 있죠. 엄밀히 이야기하면 전작의 잔영이 발표를 앞둔 차기작 캐릭터에 겹쳐지는 게 아주 좋은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만큼 전작의 캐릭터가 각인되었다는 뜻이고, 젊은 친구들이 또 이렇게 밈으로 유쾌하게 즐겨주시는 것도 관심의 표현인데 어쩌겠어요.(웃음) 제 팔자가 그런가 보다 하고 그러려니 하는 거죠. 영화 〈인턴〉을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홍보 효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반응들을 봤을 때, 젊은 관객들이 최민식 배우를 굉장히 친근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은데요. 최민식 배우는 요즘의 젊은 관객들이 본인을 어떻게 보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진짜 솔직히 별로 신경 안 써요. 거기에서부터 상처가 시작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저의 삶을 살 뿐이에요. 거기서 파생되는 것들에 있어서 자유롭고 싶어요. 이게 되게 모순된 얘기인데, 배우가 관객의 평가에 자유로울 수는 없어요. 저 역시도 사람이니까 속상할 때도 많고. 근데 가급적이면 자유롭고 싶어요. 나는 내 길을 간다, 그래야 이걸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결론이 나올 때마다 속상해하고 ‘이번엔 망했다’, ‘이번엔 대박 났다’ 막 이러면 정신병자 돼요. 맨날 망하는 작품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맨날 천만 영화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근데 다만 내가 한 작품 한 작품 할 때마다 최선을 다하고 진정성을 담아내면 된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이었다. 제 필모 중에 망한 영화들이 얼마나 많은데, 근데 후회하지 않아요.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파이란〉도 아시잖아요. 쫄딱 망한 작품이거든요. 근데 저는 나중에 마니아층도 형성이 되고, 그 작품을 통해서 얻은 것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서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메시지나 정서들이 너무 좋으니까요. 그게 단지 대중적이지 않았다고 해서 가치가 폄훼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내 만족에 살아요.
나이가 들며 더욱 연기 욕심이 많아지셨다고 했어요. 앞으로 어떤 연기를 하고 싶으신가요.
가급적이면 정체되지 않으려고 해요. 지금 이 영화 역시 그 작업의 일환이에요. 근데 단 한 가지 경계하는 게,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자는 거예요. 그건 모든 창작하는 사람들이 갖게 되는 경각심이죠. 그런데 〈인턴〉은 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많잖아요. 원작이 훌륭한 것에 대한 리메이크의 부담감을 안고서도 제가 이걸 도전했던 건, 제 스스로 이런 매너리즘을 한번 깨보자는 거였어요. 관객들의 평가야 어떻게 되든 말든, 일단 스스로 도전해 본다는 것. 앞으로 더 욕심이 많은 건 사실이에요.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적은 나이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세상이나 인간에 대해서, 관계에 대해서도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인간관계에서 오는 것들, 이해의 폭이 조금 더 넓어지고 깊어졌다고 할까요. 이 묵은지들이 그 맛을 낼 수 있게끔, 이걸 연기에서 잘 써먹어야 하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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