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예순아홉인 나는 명절만 되면 며칠 전부터 장을 보는 것이 습관이었다. 전을 부치고 갈비를 재우고 나물을 무치다 보면 명절 당일에는 이미 녹초가 됐지만 가족들이 잘 먹는 모습을 보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명절 아침, 며느리가 커다란 보냉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가방을 열어본 나는 순간 당황했다.

가방 안에는 전부 사 온 음식이 들어 있었다
동그랑땡부터 잡채, 전, 갈비까지 가지런히 포장되어 있었다. 며느리는 음식들을 하나씩 꺼내 냉장고에 넣기 시작했다.
나는 순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명절인데 그래도 음식 몇 가지는 집에서 만들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무엇보다 나는 이미 전날부터 재료를 조금씩 준비해놓은 상태였다.
“이걸 다 사 왔니?”
내가 묻자 며느리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네. 제가 어제 미리 주문했어요.”

며느리는 갑자기 냉장고에서 내가 사놓은 재료까지 꺼냈다
며느리는 냉장고를 열더니 내가 사놓은 고기와 나물, 전 재료를 발견했다.
그러고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머니, 설마 이거 오늘 다 하시려고 하셨어요?”
나는 괜히 민망해서 웃었다.
“그래도 명절인데 조금은 해야지.”
그러자 며느리가 고개를 저었다.
“지난 명절에 어머니 손목 아프다고 병원 가셨잖아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
몇 달 전 며느리에게 지나가는 말로 손목이 아파 주사를 맞았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며느리의 다음 말을 듣고 결국 웃어버렸다
며느리는 사 온 음식을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어머니, 올해부터 우리 집 명절 규칙 하나 만들어요.”
“무슨 규칙?”
그러자 며느리가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맛있는 건 직접 하는 게 아니라 잘하는 집에서 사는 걸로요.”
내가 웃자 며느리는 한마디를 더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어머니랑 저랑 놀아요. 저도 명절에 어머니 뒷모습 말고 얼굴 좀 보고 싶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동안 며느리가 오면 나는 늘 부엌에 있었다. 며느리는 설거지를 하고 나는 다음 음식을 준비했다. 생각해보니 결혼한 지 10년이 넘도록 명절에 며느리와 느긋하게 차 한잔 마셔본 기억조차 별로 없었다.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전을 한 장도 부치지 않았다. 사 온 음식을 데워 먹고 남편과 아들은 설거지를 했다. 며느리와 나는 거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한참 이야기를 했다.
식사가 끝난 뒤 며느리가 물었다.
“어머니, 사 온 것도 먹을 만하죠?”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내가 그동안 왜 그렇게 고생했나 모르겠다.”
이 이야기는 실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명절을 보내며 겪은 여러 사연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부 내용을 재구성한 실화다. 명절 음식에는 정성이 들어가지만 정성이 반드시 몇 시간 동안 부엌에 서 있어야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가족에게 가장 좋은 명절 음식은 누군가의 손목과 허리를 희생해 만든 음식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자리에 앉아 웃으며 먹을 수 있는 음식인지도 모른다.










댓글4
현명한 며느리임에 틀림이 없네요... 저렇게 얘기하는데 기분이 안좋아질 시어머니가 어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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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는 시간에는 어머니랑 저랑 놀아요. 저도 명절에 어머니 뒷모습 말고 얼굴 좀 보고 싶어요.” 며느리가 현명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명절 때 가족들이 만나는 이유가 뭘까요? 오랜만에 만나 서로 얼굴 보고 돌아가신 분들의 삶을 얘기하면서 감사한 마음을 갖는 가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명절 때 여성들만 너무 많은 노동을 합니다. 음식 준비도 모두 함께 하면 좋을 듯 합니다.
진작 이렇게 바껴야 며느리들이 명절을 반기게 됩니다. 당장 문화를 바꾸고 고부간의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작은 것부터 개선해야 될 것 같습니다. 며느리들 화이팅!!
우리 시댁도 이런 문화가 시급하다.... 올 추석에 또 하루종일 전부칠 생각하니.....깝깝하구나. 몸에 좋지도 않은 전....한끼 한번 먹으면 될껄 구지구지 많이 해서 .... 힘들고, 돈들고, 오래 두고 보관해 놓으면 맛도 없이 짬처리 하느라 짜증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