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 증조부 중매를 명성황후 시해 가담자가? 계속해서 파묘되는 하영 친일파 후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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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 (사진: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
배우 하영을 둘러싼 증조부 친일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하영이 직접 자필 사과문을 통해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지만, 이번에는 안상호의 결혼 과정에서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가담한 인물이 중매 역할을 했다는 기록까지 등장했다.
14일 일요신문은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와 일본인 아내 가와구치 이소코의 혼인 과정에서 구연수라는 인물이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구연수는 1895년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 시해에 관여한 조선인 협력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정은의 논문 ‘최초의 근대 개업의 안상호의 생애와 활동’
보도의 근거로 제시된 것은 2007년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학회지에 실린 이정은 당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의 논문이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안상호는 도쿄에 있던 의친왕 이강의 저택을 드나들면서 그곳에서 사무를 보던 가와구치를 알게 됐다. 이때 일본에 망명 중이던 구연수가 두 사람을 소개했고 결국 결혼으로 이어졌다는 내용이다.
구연수의 이력은 더욱 눈길을 끈다. 그는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인물로 기록돼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소개한 자료에도 구연수가 명성황후 시해 사건 당시 유체 소각에 관여했으며 사건 이후 일본으로 피신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후 귀국한 그는 친일단체 일진회 평의원으로 활동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의 경찰 간부와 중추원 참의 등을 지냈다. 대표적인 친일 인사 송병준의 사위이기도 했다.
정구충의 책 ‘한국 의학의 개척자’
안상호 부부와 구연수의 관계가 단순히 한 차례의 소개에 그치지 않았다는 기록도 나왔다. 1985년 출간된 정구충의 ‘한국 의학의 개척자’에는 가와구치가 안상호보다 먼저 한국에 들어와 남편의 귀국을 준비하면서 구연수의 서울 자택에 머물렀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 책은 저자가 1974년 가와구치를 직접 만나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하영의 아버지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안상호가 일본인 여성과 혼인한 배경에 대해 의친왕과의 인연을 설명하며 일본 여성과의 결혼 자체를 친일과 연결해 생각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밝혔다. 그러나 새롭게 제기된 구연수와의 접점에 대해 하영 측은 일요신문에 “당장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옥탑방의 문제아들」 방송 캡처
물론 중매를 선 사람이 친일 인사였다는 사실만으로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추가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안상호를 둘러싼 기존 논란에 이어 일본 체류 당시의 인적 관계까지 하나둘 드러나면서 하영을 향한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하영은 지난 12일 자필 사과문을 통해 가족사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점을 사과하고 증조부의 친일 행적을 인정했다. 하지만 논란 이후 KBS 2TV 예능 「옥탑방의 문제아들」 다시보기가 중단되고 일부 광고 콘텐츠가 비공개된 데 이어, 14일 예정됐던 넷플릭스 시리즈 「이런 엿같은 사랑」 라운드 인터뷰까지 취소됐다.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가족사가 방송을 통해 알려지며 시작된 논란. 사과문으로 일단락되는 듯했던 하영의 가족사 논란이 새로운 기록의 등장으로 다시 한번 깊어지고 있다.
나우무비 에디터 김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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