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편이 어려운 조카에게 매달 오십만 원씩 보내기 시작한 건 순전히 마음에서 우러난 일이었다. 조카가 혼자 아이를 키우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처음 몇 달은 문자가 꼬박꼬박 왔다. 고맙습니다, 잊지 않을게요. 그 몇 줄이 뭐라고 그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이젠 답장조차 없는 조카
1년쯤 지나자 어느 순간부터 문자가 오지 않았다. 통장에 돈이 들어간 걸 확인하는 눈치만 느껴질 뿐이었다.
서운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원래 돕는다는 게 그런 거라고,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보내는 돈을 삼십만 원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던 달이 있었다. 그런데 그달만큼은 조카에게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 있으세요?

상황이 어려워지자 돌아온 말
두 달 뒤 사정이 더 나빠져 아예 돈을 보내지 못한 달이 있었다. 그날 밤 휴대전화가 울렸다.
문자를 열어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삼촌, 저한테 왜 이러세요?” 그 한 줄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동안 보낸 몇 년치의 돈은 계산에서 빠지고 딱 한 번 못 보낸 것만 남아 있었다. 가장 많이 준 사람이 가장 먼저 원망받는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다.

집을 뛰쳐나왔다
그날 이후로 가족들 얼굴을 보는 게 예전 같지 않았다. 평생 벌어다 준 게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받는 게 익숙해지면 그게 권리가 된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한 번도 안 준 사람은 원망받을 일이 없는데 가장 많이 베푼 사람만 나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조용히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았고 그저 더는 이 원망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날 밤의 문자가 떠오른다. 자기 처지를 인정하는 것보다 남을 탓하는 게 훨씬 편했을 그 마음을, 이제는 굳이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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