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빠는 혹시라도 내가 상처받을까 봐 오랫동안 재혼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 바라보며 살아왔다.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아빠는 동창 중 홀로 지내던 분을 새엄마로 맞았다. 그때부터 새엄마와 그녀의 딸, 나까지 한 식구가 되어 살기 시작했다.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처음엔 그저 낯선 사람들과 한집에서 지내는 게 어색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새엄마의 태도는 분명하게 갈렸다.
동생에게는 살갑게 챙기면서도 나에게는 있는 듯 없는 듯 대했다. 밥상에서도,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나는 늘 뒷전이었다.
아빠 몰래 이루어지는 그 차별을 나는 아빠에게 한 번도 말하지 못했다. 아빠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을 나와 10년을 지냈다
혼자 삼키던 서러움은 결국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쌓였다. 나는 조용히 짐을 챙겨 집을 나왔고, 그 이후로 아빠와도 연락을 끊은 채 10년을 지냈다.
가끔 아빠 생각이 나도 전화를 걸지 못했다.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면 숨이 막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에도 아빠는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언젠가는 연락하겠지, 언젠가는 화해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만 품은 채였다.

마지막 인사도 못 한 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아빠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라 실감조차 나지 않았다.
마지막 인사 한마디 나누지 못한 채 나는 아빠를 그렇게 떠나보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면서도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그곳에서 10년 만에 새엄마를 다시 마주했다. 세월이 흘렀지만 나를 대하는 태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재산을 포기하라는 말
내가 그렇게 집을 나가서 아빠가 얼마나 실망했는지 아냐는 말이 먼저 날아왔다. 너 같은 자식도 자식이라고 아빠가 재산을 남겼다며, 양심이 있으면 그 재산을 포기하라는 말이 뒤이어 나왔다.

아빠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그 말은 나를 더 큰 충격에 빠뜨렸다.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나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새엄마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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