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9년의 비밀

조성가 전 대북 공작관이 개성공단 근무 당시 겪은 첩보 실태를 증언했다. 그는 공단 내부에 잔류하던 군사시설과 외부 유입 인력 동향을 포착했다. 관련 정보는 정밀 촬영과 면담을 거쳐 당국에 보고됐다.
개성공단 상주 인력은 단순 지역 주민을 넘어 외부에서 유입된 만명 이상이었다. 초기 철수하지 못한 포병 및 방사포 진지 식별 자료도 수집됐다. 현장 근로자 면담으로 파악된 수치는 대북 정보 판단에 활용됐다.

북한 근로자들은 작업장 내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이동 수단이 아닌 오락 용도로 이용했다. 남북 임금 격차로 인해 남측 기업 1개 선호 인건비는 북한 근로자 75명에 해당했다. 저렴한 임금 메리트 때문에 기업들의 추가 고용 요구가 이어졌다.
북한 근로자 남성에게는 담배 2막대기, 여성에게는 생리대 15일분이 지급됐다. 필터 없는 담배를 선호하는 특성상 남측 공초 수거가 빈번했다. 물품 반출을 위해 2층에서 마사토 마당으로 물건을 던지는 은밀한 신호 체계가 작동했다.
실장 지위의 조사관은 양심적 신고자에게 냄비와 숟가락 세트를 포상으로 제공했다. 이를 통해 파악된 공단 내 근무자는 북한 군단 소속 대령급 및 중령급 간부였다. 군간부들은 자녀 외출과 혼수품 이송 편의를 실장에게 요구했다.
평양 행정 참사들은 현대 제공 갤로퍼 차량을 타고 공단 부지를 순회했다. 12세트 48만 원 상당의 냄비 세트 등 고가 혼수품이 상자에 실렸다. CQ 검문 과정에서 북한 요원들은 흉기로 포장재를 찢어 검사하며 마찰을 빚었다.
개성공단 부지 규모는 2천만 평이며 실제 공단은 200만 평, 배후도시 1050만 평으로 구성됐다. 문산-개성 축선은 6.25 전쟁 당시 3일 만에 서울 도달이 가능한 주축선이었다. 공단 가동은 군사적 도발 억제 걋수이자 안보적 완충재 역할을 수행했다.
관리사무소 폭파 이후에도 잔여 공장 설비는 보존 상태를 유지했으나 전산망은 훼손됐다. 원부자재와 전력 공급 중단으로 북한 단독 가동은 불가능한 상태다. 개성 시민들은 공단 공급 전기와 수도 혜택을 공유하며 재개 긍정 여론을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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